고(故)정봉수 감독은 투병 중에도 마라톤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았다.사진은작년 구창식,엄재철 코치에게 선수 훈련법을 가르치던 모습./조선일보 DB사진(사진위쪽)<br>고(故) 정봉수 감독과 한솥밥을 먹다 지난 99년 결별한 이봉주(삼성전자)가 고인의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6일 고 정봉수 감독(66)의 영전 앞에 선 이봉주(31·삼성전자)는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만성 신부전증과 당뇨에 의한 합병증을 앓아오다 지난 5일 별세한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중앙병원 3층 30호. 세계육상선수권이 열리는 캐나다로 출국하기 앞서 오인환 코치와 함께 들른 이봉주는 회한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지난 99년 회사의 팀 운영 방침에 불만을 표시하며 팀 동료들과 함께 정 감독과 결별한 지 2년 만. 그 이후 두 번째 만남에서 이봉주는 “제자의 도리를 못한 것 같아…”라며 눈물을 닦아 냈다. 92년 정 감독의 조련에 힘입어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썼던 황영조 감독(31·국민체육진흥공단)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루 종일 빈소를 지켰다.

부인 여우분(64)씨와 아들, 큰 딸, 셋째 딸은 외국에 살고 있어 빈소를 지키는 가족은 둘째 딸과 사위뿐이었다. 박해용 서울시청 감독, 황규훈 건국대 감독, 정하준 코오롱 부감독 등 고인의 후배, 제자와 육상인들이 유족들을 대신했다. 1990년 이후 한국 마라톤의 힘을 세계에 알렸던 정 감독은 그렇게 20여년의 ‘마라톤 여정’을 마감하고 있었다.

단거리 선수 출신이었던 정 감독의 마라톤 인생은 1987년 코오롱 이동찬 회장(현 명예회장)이 마라톤팀을 창단, 그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시작됐다. 창단 멤버는 김종윤 1명. 곧바로 김완기, 이창우를 영입해 팀 골격을 갖췄다.

1990년 김완기의 한국 최고기록(2시간11분34초) 수립, 1991년 황영조의 유니버시아드 제패 및 이창우의 요미우리마라톤 2연패, 1992년 황영조 올림픽 제패, 1994년 황영조 아시안게임 제패, 1996년 이봉주 올림픽 은메달, 1997년 권은주 한국 여자 최고기록(2시간26분12초), 1998년 이봉주 아시안게임 제패….

정 감독은 끊임없이 꿈나무를 발굴하고 단련시켜 스타로 만들어 냈다. 일본 실업팀에서 거액을 주겠다며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헌신적으로 지원해준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정 감독은 코오롱 감독 재임 시절 가족을 ‘팽개치고’ 선수들과 숙소생활을 함께 했다. “마라톤 선수는 세세한 것까지 살피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때로 그런 감독에 반발하곤 했지만, 마라톤에 대한 고인의 ‘맹목적인 사랑’만큼은 거역할 수 없었다. 정 감독은 고향인 경북 김천시의 금릉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발인 9일 7시. (02)3010-2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