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승승장구하는 듯하지만 냉정히 말해
대중주의가 판치고 있는거죠. 질적 수준 면에선 위기 아닙니까. 인간과
삶을 인문주의적 시선으로 직시하는 영화를 찾기 힘들어요. 그래서 내가
한번 찍어 보려는 것입니다."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의 하나인 이윤택(49·
연희단거리패 대표)이 영화 감독 겸업을 선언했다. 그가 메가폰을 잡고
'신인감독'으로 데뷔할 작품은 연극으로 내놓았던 '오구'. 한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상가 풍경을 해학 가득하게 묘사하면서 '죽음'을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본 이윤택 연극의 대표작이다.
이윤택은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금 3억5000만원을 받았으며,
영화사 마오엔터테인먼트가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9월 1일
촬영개시한다고 밝혔다. 개봉은 내년 설날경. 경남 밀양에 꾸민
연극촌에서 50여 단원들과 합숙하고 있는 이윤택은 영화도 밀양 일대에서
찍는다. 주무대인 상가 장면은 이윤택의 고교 시절 은사의 고택(고택)을
빌린다. 출연진도 대부분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을 기용하되, 어머니 역
강부자등 몇몇 주연급은 영입할 계획. 연극 활동의 절정기에 그는 왜
영상 장르를 곁눈질하게 됐을까.
"대중주의와 인문주의의 행복한 결합을 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기
때문이죠. 지금 한국영화를 휩쓰는 건 젊은 취향의 깡패영화와 멜러
아닙니까. 몇몇 작가주의 영화는 대중에겐 지루하죠. 나의 목표는
숨가쁘게 웃으며 보다가 극장 문을 나설 때 머리에 한가지 생각이 남는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도 노크할 겁니다.".
이윤택은 "사실 어릴 때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다"고 했다.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한때 영화판을 기웃거렸으며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나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등의 시나리오, 각본을 쓰기도 했다.
그는 "연극계가 어려우니 연극에만 정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오히려 그래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고 영화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연극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저처럼 연극에서 뮤지컬로
옮겼다가 영화를 찍는 사람도 있어야죠. 저는 연극도 계속할 것이고 영화
체험은 좋은 연극을 위해서도 중요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