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 3국이 벌어진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대국실 주변은 대국
개시 전부터 팽팽한 긴장이 넘쳐 흐르는 분위기. 대국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공교롭게도 동승, 출발부터 '오월동주'로 시작한 두
대국자는 쌍방 입을 한 일자로 다물고 눈 길을 피한 채 자리에 착석했다.
이날 바둑은 몸 싸움 보다는 서로 진영을 구축하면서 동정을 살피는
신중한 포석으로 시작돼 1, 2국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
○…이창호 구단은 동생 영호(25)씨와, 이세돌 삼단은 맏형 이상훈(26)
삼단과 각각 전날 밤 대국장 숙소에서 합숙(?)하며 필승의 결의를
다졌다. 이 구단은 과거 중요한 대국 때마다 영호 씨와 함께 투숙, 좋은
성적을 올리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이번 결승 1, 2국 때 바둑 사업 관계로
중국에 머물렀다가 형이 연패하자 닷새 전 서둘러 귀국한 것. 이세돌
역시 지난 4월 초 일본 후지쓰배에 단신 출전했다가 패하고 돌아온 후
"형이 따라오지 않아 영 바둑이 안풀렸다"고 푸념한 바 있다.
○…이창호 구단은 전날 밤 10시 쯤 방을 잡는 즉시 바둑 판을 요청,
1시간 가량 포석 구상에 골몰했다는 후문. 새벽 1시께 잠 자리에
들었으며 대국 당일 아침은 관례대로 거른 채 주스 한 잔으로 대신했다.
○…이세돌 삼단은 연구실에서 하루를 보내던 과거 패턴과는 달리 5월
들어선 집에서 이 구단의 기보를 집중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감기 증세도 있었던데다, 집중 연구엔 집이 낫다고 판단한 것. 이 삼단은
이같은 운기조식(?) 덕인지 대국 당일엔 감기가 다 나은 가쁜한
컨디션으로 임전.
○…이날 바둑은 지난 번 1, 2국때와는 달리 피차 신중한 운석으로
시종했으며 형세도 엎치락 뒤치락, '막판'다운 열기를 연출했다.
검토실에 운집한 기사들은 연령별로 갈려 "이창호 우세", "이세돌
역전 리드", "백중" 등 여러 설이 오가는 모습. 중반이 훨씬 넘어서도
형세가 뚜렷이 갈리지 않자 한 전문기사는 "오늘은 모처럼 결승전 답게
저녁 때나 승패가 갈릴 모양"이라고 전망. 지난 2월 하순의 1, 2국 때는
두 판 모두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끝났었다.
○…대국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프로 기사 등 바둑 관계자들이 물 밀듯이
입장, 이 바둑에 쏠린 엄청난 관심을 반영했다. 대국 시작 2시간이 채
못된 오전 중에 벌써 2개의 검토실에 자리가 부족해졌을 정도. 한편
인터넷 중계 사이트 역시 초반부터 접속이 폭주, 불과 30분만인 오전
10시께 이미 사이버 기원, 오로, LG 홈페이지 등 각종 사이트 접속자
누계가 5000명에 육박하는 성황을 이뤘다. 또 오후 2시 30분 경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3,800명을 기록해 이번 대회 결승 2국 때의 2천936명을
가볍게 경신.
○…오후 검토장엔 벽안의 '손님'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눈 길. 이들은
지난 주 명지대에서 열린 제1회 바둑학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세계
18개국의 '바둑 학자'들로 밝혀졌는데, 세계 최강 기사들의 대국
모습과 국내 프로들의 열띤 검토 광경에 넋을 잃은 듯한 표정 들. 이들은
대부분 바둑 관련 학문의 박사학위 소지자 등 세계적 석학들임에도
나이어린 국내 기사들로부터 사인을 받아들곤 어린 아이 처럼
기뻐하기도.
( 이홍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