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괴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대표작 두편 '성냥공장
소녀'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가 서울 '시네큐브
광화문'극장에서 나란히 상영된다.
카우리스마키는 풍자와 독설을 무기삼아 세상에 싸움을 거는 듯한
일련의 작품들로 전세계 열혈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컬트 감독. 두편
상영은 '걸작VS졸작'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두편 모두 국제 무대에서
높이 평가 받았지만, 카우리스마키 스스로는 '성냥공장 소녀'를
'최고작'으로, '레닌그라드…'는 '졸작'으로 언급했다는 데
착안한 제목이다.
두 영화는 테크닉을 경계하는 듯 단순하고 건조한 화법과 무성영화적인
표현법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성냥공장 소녀'가 정색한 채
어둡고 냉정하게 이야기를 다루는데 비해서, '레닌그라드...'는
인물들의 복장에서 스토리 진행까지 격식을 갖추지 않은 채 파격적인
스타일로 기괴한 유머를 구사한다. '레닌그라드…'가 국내 상영되었던
것과 달리 '성냥공장 소녀'는 국내 첫 소개작이다.
영화 시작 후
10분이 지나서야 첫 대사가 등장하는 이 '과묵한 영화'는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 채 일에만 찌들어 있던 한 소녀가 댄스홀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지낸 뒤 임신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신파'지만, 카우리스마키는 소녀가 그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뒤 독이 든 약물로 세상에 무차별적인 복수를 벌이는 과정을
차갑게 묘사함으로써 비범한 면모를 과시한다. 이야기에 담겨 있는
폭발적 순간들은 생략하면서 정작 그 순간들이 남긴 쓸쓸하고 구차한
흔적들만을 건조하게 묘사해 소외의 느낌을 강조하는 화술이 긴 울림을
남긴다.
'레닌그라드…'는 핀란드에서 폴카를 연주하던 밴드가 "아메리카에선
모든 것을 팔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미국으로 건너가 겪는 고생담을
독특한 필치로 그렸다. 미국을 '꿈이 증발해버린 불모의 땅'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정반대의 스타일을 가진 80년대 미국
독립영화의 대표작인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과 같은 자리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라는 밴드 멤버들과 매니저의
관계에서 정치적 은유를 읽어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예측을 불허하는 이 영화의 블랙 유머는 그야말로 '썰렁한
웃음'이 어떤 건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