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런 쓰레기같은 잡지는 읽지 않는다.” 서독 건국의 주역으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토대를 놓은 초대총리 아데나워의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대한 평이다.
총리 때 워낙 시달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내외를 막론하고 “슈피겔이 없었다면 독일 민주주의와 정치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슈피겔은 서구에서 가장 낙후됐다던 독일 민주주의를 현재 수준으로 끌어올린 견인차다.
좌파 상업주의와 시민사회의 파수꾼이라는 양극의 평판 사이에서 슈피겔이 지성의 대륙 유럽 최고의 시사주간지 자리에 오르게 된 원동력을 추적하면서, 창간부터 현재까지를 이끈 사주이자 편집인 루돌프 아우구스타인(Rudolf Augustein \\ 78)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47년 창간된 슈피겔에 따라 붙는 별칭 중 하나가 ‘점령군의 아이’다. 2차대전 때 독일군 포병 관측장교로 복무하다 미군 포로가 됐던 아우구스타인은 종전 후 영국 점령군으로부터 ‘디제 보헤’지를 넘겨받아 1월4일자로 창간호를 냈다. 모델은 ‘타임’이었다. 그런 잡지가 있어야 민주주의도 가능하다는 미국과 영국의 판단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슈피겔 표지의 빨간 테두리는 이같은 타임 모방의 화석이다.
현재는 거의 2선에 물러섰지만 90년대 초반까지도 그는 수시로 편집국에 들러 주요 현안들에 대해서는 편집국 간부들과 함께 토론하며 독일 사회의 쟁점 만들기를 진두 지휘했다. 아우스트 편집국장은 “지금도 아우구스타인과 종종 기사에 관한 토론을 하며 많은 자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패정치인 킬러’ 슈피겔의 최대 희생자는 독일통일의 영웅 헬무트 콜 전총리다. 재임 당시 콜을 ‘아둔함의 대명사’으로 희화화시킨 슈피겔은 퇴임후에도 그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해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렸다. 그 바람에 콜이 이끌던 기민당도 반신불수 정당으로 전락했다. 아데나워, 프란츠 요셉 슈트라우스, 콜 등 주로 독일 보수노선의 큰 정치인들이 슈피겔의 사냥감이었다.
그래서 독일 정가에서는 슈피겔에 물리면 정치생명이나 생물학적 생명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실제로 87년 슈피겔의 폭로에 시달리던 기민당 중견정치인 바르셀은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소위 ‘슈피겔 사건(SPIEGEL-Affaere)’으로 불리는, 슈피겔 보도로 인한 쟁점의 역사는 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토군의 기동작전을 “제한전 준비”라는 10월 8일자 커버스토리로 보도함으로써 아우구스타인을 비롯한 편집국 간부 기자들이 103일 동안 수사를 받아야 했다. 슈피겔이 독일국민의 관심권에 들어온 것도 이 때부터다. 이후 줄곧 정치인의 부패나 정경유착에 관한 가차없는 폭로를 통해 ‘슈피겔 사건’은 이제 독일에서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슈피겔의 이런 ‘부패’와의 전쟁에서 지원포격을 하는 부대가 ‘슈피겔 조사부(SPIEGEL-Archiv)’다. 2500만건의 문헌정보와 400만장의 사진를 보유하고 있는 슈피겔 조사부는 명실공히 유럽 최대다. 슈피겔 조사부 기자는 자료수집 정리 뿐만 아니라 작성된 기사의 사실확인 작업까지 책임진다. 조사부 기자로만 11명의 박사를 포함, 80명이 일하고 있다.
이런 조사부의 지원을 받는 양질의 기사작성이 있었기에 슈피겔은 2000년도 미디어 인용건수 조사에서 1109건으로 판매부수 400만의 일간지 빌트(776)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지(443)를 멀찌감치 제치고 확고한 1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판매부수에서는 슈피겔을 약간 앞서는 경쟁 주간지 슈테른의 경우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언론출판도시 함부르크의 브란츠비테 19번가에 있는 슈피겔은 아우스트 편집국장 지휘 아래 10개의 국내 특파원사무소와 23개의 해외특파원 사무소를 두고 270명의 기자들이 매주 월요일에 맞춰 평균 260면씩 만든다. 독일의 대외관심 비중을 말해 주듯 EU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3명, 모스크바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런던에 각각 2명을 두고 있고 한국뉴스는 1명이 있는 도쿄특파원이 담당한다.
지난해 주당 평균 판매부수는 103만1727부. 독일의 권위있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지나 쥐트도이체지의 판매부수가 40만부 남짓 수준임을 감안할 때 ‘난해하기로 정평있는’ 슈피겔 100만부는 여전히 하나의 신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