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홍보사 ''영화방''의 최정선(24맨오른쪽)씨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관객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요령을 설명하고있다.

#1 충무로 홍보사 사무실.

지난달 31일 오전8시30분. 토요일 이른 아침이지만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 뒤 영화 홍보사 '영화방' 사무실은 전쟁터 야전 사령부처럼
소란스럽다. 영화 '친구' 개봉 D데이다.

칠판에는 하루 일정이 분 단위로 빼곡이 적혀 있고, 직원들이 나눠
맡아야 할 극장 목록을 포함, 할 일이 가득 하다.

"자, 서둘러주세요. 출석 부르겠습니다… 서울극장 8명, 명보극장 4명,
중앙극장 4명씩 나갑니다. 주공공이(서울 강남의 극장 이름)는 순영씨가
좀 맡아주시고…" 개봉 첫날 첫회 관객 선물로 티셔츠를 나눠줄
아르바이트 대학생 25명이 영화 속 고등학생 시절 검정 교복으로
갈아입자, 어딘지 비장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개봉 첫날의 하일라이트는 배우들 무대 인사다. 오늘의 첫 인사는 종로
3가 서울극장에서 있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 흥행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메인 극장이기 때문이다. 강남이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아직은
종로 3가"라는 게 영화인들 이야기. 1회가 시작 되는 10시 서울
극장으로 배우들이 나선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개봉 규모로 와이드
오픈하는 영화인만큼 극장 인사만도 5차례 계획돼 있다.

#2 종로3가 서울극장

오전9시20분, 서울극장 옆 카페 2층에 현장 본부가 급조됐다. 감독
곽경택. 바로 앞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기에 이번 영화는 정말 '목숨
걸린' 기회다. "첫 영화 '억수탕'하고 다음 작품 '닥터K'에 든
관객수 전체보다 (친구) 첫날 예매수가 더 많다는 거 아임니꺼." 진한
부산 사투리.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극장 앞은 '친구'
제작자와 스탭들은 물론, 장윤현 감독 같은, 이 영화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인사들까지, 영화계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대 인사 시간이 가까와졌다. 배우들이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다. 장동건, 유오성이 카페에서 나오자 팬들이
달려든다.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아르바이트 학생들, 앞 좀
막아주세요. 여러분, 이러시면 저희가 무대 인사를 못합니다." 뒷쪽
엘리베이터를 향해 뛴다. "전부 타셨죠?" 부리나케 인원을 확인한다.
5분 간의 무대인사.

"배우들이 길 찾아 주는 것부터, 인사 끝내고 인터뷰, 식사 같은 다음
일정 늦지 않게 챙기는 일도 큰 일이지요." 경력 1년 조금 넘는
홍보담당 최정선씨(24)는 이제 "이골이 났다"는 표정이다. 서울 극장선
12시15분 2회 상영 때 또 무대 인사가 있다.

#3 서울극장 앞 풍경

극장 앞에는 관객만 있는 게 아니다. 한 주 먼저 개봉한 '선물' 제작사
좋은영화 홍보팀 직원이 눈에 띈다. "처음엔 '친구' 쪽으로
몰리겠지만, 오후부터는 '선물'도 매진될 것 같아요. 걱정 안해요."
웃는 얼굴이지만, 긴장된 표정이다. 이날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미스
에이전트' 홍보사도 대표부터 직원까지 총출동했다. "예전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 개봉을 피해서 걸었는데, 요즘은 반대 경우가
많네요."

#4.장동건의 스타크래프트 밴

5시엔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무대 인사가 있다. 토요일 오후의 절망적인
혼잡 속에, 한강다리 건너는 데 이만큼 다급해본 적이 있었을까?
장동건이 탄 밴은 4시45분에야 겨우 한남대교를 건넌다. "빨리 좀
가주세요. 이러다가 무대인사 못해요." 정작 주인공인 장동건은
뒷자리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5.이태원 J바.

전회 매진, 전석 만원. '친구' 개봉 파티는 흥행 푸른 신호등 덕인지
잔뜩 들떠있다. 마침 영화 속 상택 역을 맡은 서태화씨 생일이라
즉석에서 생일 잔치로 돌변한다. 케이크를 서태화 얼굴에 갖다
문지르면서 폭소가 터진다. 제작자와 스탭, 출연진은 들떴지만, 홍보사
직원들은 힘든 하루를 접는 피로감에 젖는다. "영화 홍보라면 대단히
화려해보이지요. 매일 유명한 스타와 감독과 지내는 것 같지만, 일은
어디까지나 일일 뿐입니다." 이 홍보사 직원은 4명. 모두 여자다. 일이
힘든 것에 비해 보수가 높은 편도 아니라 이직(리직)도 많다. "영화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지요. 남의 영화 홍보만 해줄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내 영화도 만들고 싶어서 현장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잘 나가는 여성 제작자들 상당수가 오랜
홍보 일로 기량을 닦았다. "내일은 부산 찍고 대구, 광주를 지나
돌아옵니다." 아침 8시 비행기로 부산에 가서 1회 인사한 뒤 자동차로
대구, 광주를 도는 강행군이다. "영화 홍보는 지금부턴 걸요." 지치는
것도 잠시. '일'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눈이 반짝인다. 그렇게 개봉
첫날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