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EP-3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 충돌 사건은 1960년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미 U-2 정찰기 사건을 연상케 한다.
1만 5200 상공에서 마하 0.7의 속도로 비행하며 지상의 표적을 사진촬영할 수 있는 최첨단 첩보 정찰기 U-2기가 1960년 5월 1일 소련 공군에 의해 격추됐다.
미국 정부는 추락한 항공기의 임무는 정찰이 아니라 기상관측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체포된 조종사의 진술을 확보한 소련은 스파이 비행 중지 약속, 사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미국은 어쩔수 없이 사실을 시인했으나, 이런 임무가 정당하다고 받아치며 역공세를 취했다.
니키타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의 태도에 분노했다. 영국 등 주변국들이 중재에 나섰고, 미국이 U-2 비행을 취소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사건은 수그러드는 듯 했다.
그러나 미국은 끝내 사과를 거부했고, 미·소간의 냉전은 한층 깊어졌다. 급랭한 양국 관계는 제네바 군축회담을 위기로 내몰았고, 유엔에서 서로 비난성명을 주고 받았다.
소련에 체포됐던 미 조종사는 2년 후인 62년 소련 스파이와 맞교환돼 풀려났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59년 제1차 미소 정상회담으로 개선의 기미를 보였던 두 나라 관계는 급격히 나빠졌고, 2년 뒤인 62년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