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도끼-호흡기만으로 사투...구하려던 집주인 아들은 이미 대피 ##

“1층에 아들이 있어요,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4일 오전 3시53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312-135 2층 주택 화재 현장. 한 할머니가 진화 작업을 벌이던 서울 서부소방서 소속 소방대원들에게 다가와 다급하게 외쳤다. 옆집을 통해 가까스로 탈출한 집주인 선덕치(여·69)씨였다.

◆ 건물붕괴 및 구조 =아직 불길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대원들은 선씨의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감행했다. 단 한 사람의 인명 피해라도 막기 위해 소방대원들이 몸을 던진 것이다.

화재진화작업과 구조작업이 동시에 전개됐다. 김기석 구조대 부대장을 비롯해 구조대원 4명이 1층 현관을 통해 건물진입을 시도했다. 공기호흡기와 손도끼만 든 채 로프로 서로 몸을 묶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바닥을 더듬어 갔다. 강남길 소방사 등 5명은 현관에서 건물 내로 들어간 대원들을 엄호했다. 그러나 이 시간, ‘방화 혐의’를 받고 있는 선씨의 아들은 이미 집을 빠져 나온 상황이었다.

“무너질 것 같아. 빨리 피해, 빨리….”

오전 4시12분, 구조대원들이 1층 방을 돌며 수색을 하는 순간 주변에서 외마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대피할 새도 없이 2층 건물이 내려앉으면서 대원들을 덮쳤다.

함께 출동했던 서부소방서 대원들이 곧바로 구조에 나섰고 이어 인근 종로·마포소방서 등에서 구조대가 도착했다. 매몰 20분 후, 강남길 소방사 등 2명이 구조됐지만 나머지 대원들은 무너져내린 벽돌에 묻혀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굴착기까지 동원돼 구조작업을 벌여 나머지 7명을 찾았지만, 이승기 소방사를 제외한 6명은 이미 숨이 멈춰 있었다. 우리나라 소방 역사상 처음으로 소방관 6명이 한꺼번에 순직하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불이 난 집은 슬래브와 벽돌로 지은 2층 주택으로 30년이 지난 노후건물이었다. 1층은 집주인인 선씨와 아들 최모(31)씨가 각각 방 1개씩을 사용했고, 방 3개가 있는 2층에는 김모(28)씨 부부와 이모(22)씨 남매 등 5명이 세들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화재 직후 모두 집을 빠져나와 화를 면했다.

◆ 화재원인 및 수사 =화재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은 이날 오후 선씨의 아들 최씨로부터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후 술을 먹고 방에다 불을 붙였다”는 자백을 받고 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씨는 경찰에서 “소주 3병을 마시고 귀가하자 어머니가 ‘나가 죽어라’며 혼을 내, 갑자기 화가 나 어머니 머리와 배를 때리고 방에 있던 노트에 부엌 가스레인지로 불을 붙여 나무원탁에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의 집에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뒷문으로 집을 나왔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주민들에 따르면 최씨는 10년 전부터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을 자주 들락거렸고 어머니 선씨와 다툼이 잦았으며, 평소 주민들에게도 자주 폭력을 휘둘러 온 것으로 밝혀졌다.

★ 김대통령, 순직 소방관들에 조의

김대중 대통령은 4일 진화작업을 벌이다 소방관 6명이 숨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참사와 관련, 남궁진 정무수석을 빈소에 보내
조의를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