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영화평론을 하면서도 지난 18일 작고하신 원로 평론가 이영일
선생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월간 '영화예술'의 발행인이며
'한국영화전사'(1969)의 저자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생전에 인사를
드린 것도 딱 한차례뿐이었다. 그것도 한두해 전에. 고인의 영정에
문안은 드렸지만 다분히 형식적이며 이기적인 것이었다. 올해 얼떨결에
국제비평가연맹 한국지부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 분이 회장이었기
때문이랄까. 한마디로 그는 이 까마득한 후배 평론가의 관심권 밖에
존재했던 것이다.

간헐적으로 듣긴 했지만 그 삶이 얼마나 영화에 열정적이며
헌신적이었는가를 확실히 인식하게 된 건 며칠 전 어느 추도의 글을 읽고
나서였다. 그 "아름다운 노인"은 "'영화예술'을 발간하려는
목적으로 30여 편의 시나리오를 썼고 집을 팔아치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영화평론가로서의 내 삶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결코 영화평론에 인생을 건 적이 없다. 도무지 그럴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난 투덜대곤 했다. 우리에겐 왜 존경할 만한 '진짜 어른'이
없는 거냐고. 한술 더 떠 평론가를 영화 주변부에서 서성이며 먹이나
찾는 '들러리'요 '기생충'이라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고백컨대 이 순간, 내 특유의 성마름과 자괴감이 진정 부끄럽다. 그건
분명히 한평생 영화평론에 자신을 투신해온 이선생님 같은 분을 욕되게
하는, 그릇된 감정이었다. 이제 난 고질적으로 나를 괴롭혀온 그 소모적
감정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고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