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인 노예 춤서 유래… 민초들의 ‘신명풀이’
브라질 제2의 도시 리오데자네이로 공항에서 만난 40대 택시기사
마리엘은 "리오를 세 단어로 뭐라는지 아느냐"더니, "삼바, 바다,
섹스"라며 껄껄거렸다. 삼바를 좋아하는지 묻자 당연하다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브라질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 동안 열광하는 삼바학교와
축구클럽이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삼바(Samba)의 고향' 리오(포트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사람들은 '히오'라고 했다)는 '세계 3대 미항'답게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리오의 상징물인 거대한 콜코바도의 예수상이 창 밖으로
손에 닿을 듯 스쳐 지나고, 비취빛 하늘을 닮은 바다는 하얀 포말로
도시의 허리를 핥으며 끝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작년 '리오 카니발' 대상을 차지한 명문 삼바학교 '임페라트리스
레오폴지나'를 찾아나섰다. 학교는 시내 북쪽 산동네, 허름한 시멘트
주택이 늘어선 골목 어귀에 있었다. 녹색 칠이 벗겨져 퇴색된 녹슨
철문과 담벼락. 호사스런 카니발에서 상상하던 화려함은 없었다. 이 학교
윌송 히베이로 부회장은 "40개 넘는 리오 삼바학교는 모두 1940년대부터
이런 서민 동네에 뿌리내렸다"고 했다. 삼바의 원초적 힘과 생명력은
바로 그런 민중성에 뿌리를 대고 있었다.
문을 밀치자 북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달려든다. 500평은 됨직한 마당.
예닐곱살 여자아이부터 머리 희끗한 노인들까지 200여명이 삼바춤에
취했다. 한켠에선 남자 너댓명이 숨가쁘게 삼바북을 두드린다. 삼바북은
양철통에 얇은 가죽을 씌워 '탱탱'하는 센 소리가 난다. 이름도 크기에
따라 '제1 귀머거리' '제2 귀머거리'식으로 불린다. "옆 줄 맞추고!
허리 크게 돌려야지!" 멜로디도 장식음도 없이 그저 포효하는 북소리,
황홀경에 빠져 발을 놀리고 허리를 돌리고 목이 터져라 합창하는 사람들―.
민초들의 신명풀이였다.
시내 남동쪽 보타포고는 초기 삼바 역사에서 중요한 무대다. 과라니족
인디언말로 '카리오카(우리 동네)'라고 불리던 보타포고에 처음 닻을
내린 포르투갈 선원들은 바다가 구릉 사이를 비집고 든 해안을 강으로
착각했다. 지금은 매립돼 당시 풍광을 찾을 길 없지만, '1월의 강'이란
리오의 이름도 거기서 유래했다. 삼바는 브라질 옛 수도였던 북쪽
살바돌에서 흑인노예의 춤으로 시작됐고, '카리오카'를 통해 리오에
흘러들었다. 그 춤과 리듬은 1888년 노예해방 이후 폴카같은 백인음악과
섞여 오늘의 삼바가 됐다. '삼바'란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리오에도
정설이 없었지만, 첫 삼바 창작곡은 1917년 'por telefone(전화로)'를
꼽는다.
매년 2월 '리오 카니발'이 열리는 '삼보 드로모'에 들렀다. 왼쪽으로
콘크리트 스탠드와 조명탑이 세워진 500여 거리. 평소엔 차가 다니지만,
벌써 2001년 축제를 준비하느라 철문을 닫아 걸었다. 카니발 기간에
브라질 모든 도시와 마을이 삼바 축제를 벌인다. 예산은 정부가
지원한다. 대통령이건 의회건 삼바 예산은 깎지 않는 게 불문율이란다.
유럽 여러 나라 백인과 흑인, 그리고 다양한 혼혈과 아시아인까지 섞인
다인종 국가 브라질. 그들에게 삼바는 춤과 음악이라는 여흥을 넘어 민족
동질성을 담보하는 '문화 코드'였다.
【리오데자네이로=권혁종기자 h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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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과 가요 속의 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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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는 용어가 익숙한데 비해 서구 팝음악 속에선 듣기 어렵다. 아마도
격렬한 4분의 2박자 셔플 리듬을 매끈한 팝송으로 가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삼바는 '신나게 춤추는 음악'이지 우아한 감상용 음악이
아니다. 브라질 사람들도 '보기는 쉬워도 춤추기는 어렵다'는 삼바의
바운스 리듬을 익혀 카니발을 즐기는데 만족했다. 그래서 삼바는 다른
라틴 장르에 비해 보컬도 훨씬 적다. 유명한 '브라질'이란 곡처럼
리듬을 순화하고 보컬을 강조한 세레나데 '삼바 캉시옹'도 있지만,
주도적 스타일은 아니다.
가요에서도 다를 바 없다. 1980년대 말 이광조가 '즐거운 인생'으로
삼바를 처음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뒤로도
설운도가 '삼바의 여인'이란 곡을 냈고, 그룹 마로니에가 '큐피드의
화살'로 삼바 리듬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삼바의 여인'에서
보듯, 토속적 원형 리듬 보다 '정열' '여인' 같은 삼바 이미지를
차용하는데 그쳤다. (아바나=임진모ㆍ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