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야붕은 예수님'의 진짜 야쿠자 나카지마 데츠오 부부 ##
## 한국 유학생 부인과 결혼 후 7년 걸려 암흑가 '탈출'##
선입견이라는 게 참 무섭다. 요즘 한국과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오야붕은 예수님(한국명 '미션 바라바')'이란 영화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면서 내심 긴장했다. 일본 야쿠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 그
실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먹이를 찾기 위해 번뜩이는 눈,
올백으로 넘긴 머리와 하얀 구두, 그리고 험상궂게 생긴 얼굴, 단칼에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일본도 등 야쿠자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오야붕은 예수님'의 주인공이 바로 야쿠자 출신이다. 돈과 여자와
범죄가 늘 우글거리는 암흑가에서 20년 동안 오야붕 노릇을 했다. 마약
거래 등 살인과 강도짓만 빼고는 안해본 것이 없다는 '오야붕은
예수님'의 주인공 나카지마 데츠오(50).
사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약 2년 전이다. 일본에 유학와 있는 친척을
따라 교회에 갔는데 그가 그 교회의 신도였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신도가 아닌 그 교회를 사서 헌납할 정도의 아주 독실한 신자였다.
그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참 특별한 일본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의 인구 1억2500만명 중 기독교인은 채 3%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밤이면 빨간 십자가밖에 보이지 않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거의 십자가를 발견할 수가 없다. 바로 이같은 일본의 분위기 속에서
나카지마씨는 선뜻 교회를 사서 헌납한 것이다. 그것도 한국인 신도들을
위해.
그런 그가 한국인 아내를 만나 어둠의 그늘에서 양지의 일반 시민으로
복귀하기까지 야쿠자 오야붕(두목)이었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카지마씨가 아내 이성애씨를 만난 것은 이씨가 메이크업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유학와 공부할 때였다. 그는 부동산 회사 사장
행세를 하며 이씨에게 적극적으로 프로포즈를 했다. 당시 그는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상태였다.
■부하 7명 이끌고 전도활동 나서
"저는 그 무렵 나이트클럽에 자주 놀러 갔어요. 그때 만났는데 '그냥
돈 잘 쓰는 부동산업자구나'라고만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 정이 들어
결혼을 하고 보니 그 무시무시한 야쿠자에다 술과 여자가 끊이지 않는
거예요. 신혼 중에도 외도를 하구요." 이씨는 세 번 정도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붙잡아 준 것은 신앙.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도 널 용서하고
받아들였는데 넌 왜 네 남편을 못 받아 들이냐'구요. 그 때 참 많이
반성했어요. 놀만큼 논 저도 하나님이 모두 알고 받아주었는데 왜 나는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남편을 포용할 수가
있겠더라구요."
신기한 것은 결혼하기 전 교회에 나가겠노라고 했었던 약속. 이
하나만은 나카지마씨가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외박을 해도 토요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왔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일요일에 교회를 가기 위해서였다.
나카지마씨는 "그 당시에는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했다. 일주일 내내
죄를 저지르고 일요일에 가서 참회를 하는, 야쿠자와 가장의 두
얼굴이었다"며 "교회에 가면 괜히 마음이 아늑하고 편해지는 느낌이
발길을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고 했다.
하지만 야쿠자에서 일반 시민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7년 동안 그는 '무늬만 교회신자'였다.
그가 야쿠자에 입문한 것은 17세 때. 중학교 때 야쿠자 영화를 보고
남자답고 멋있다는 생각에서 그 길에 들어서게 됐다. 또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빨리 돈을 벌어 '삐까 번쩍'한 외제차를 굴리며 폼나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20년의 야쿠자 생활 동안 별의 별짓을 다했다고
한다. 감옥에 다녀오면서 별도 두 개 달았다. 세례를 받은 것은 87년, 그
때까지도 그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딸
한나(8ㆍ초등학교 2년)가 태어났다.
그가 결정적으로 야쿠자 생활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선배 야쿠자를
살해하려다가 실패하고 조직에서 추방당했을 때였다. 그의 형이
야마구치조와 함께 일본 야쿠자의 양대 산맥를 이루고 있는
'스미요시'파의 오야붕이었으므로, 야쿠자 세계에서 남아 있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95년 7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20년 동안 발을 담그고 있었던 어둠의 세계를 뒤로 하고 교회로 향했다.
그리고 8명이 모여 '미션 바라바'라는 개신교 선교단을 만들어 전도에
나섰다.
흥미있는 것은 이 8명 중 3명이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아내들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전도를 하고 다니며 이들을 뒷골목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 것이다. 게다가 3명의 한국 부인들의 친정에서는
일본인 사위가 잔혹하기로 유명한 야쿠자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인들은 더 결사적으로 남편들의 갱생에 온 정성을
쏟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한국인 아내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98년
2월에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는 미 중의원
조찬ㆍ오찬모임에 나가 신앙 생활에 대한 스피치를 하기도 했다. 같은 해
자신들의 신앙 고백을 담은 '문신 새긴 기독교인들'이란 책도 펴냈다.
바로 이 책이 일본에서 화제가 돼 이번에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영화제작회사 '키네마 도쿄'의 다카하시 회장이 영화화를
제의해 왔다고 한다.
"야쿠자의 세계는 늘 불안하지요. 술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총을
옆에 놓고 잡니다. 살아남기 위한 자기보호책이죠. 언젠가는 교도소에
가야 하고 또 언제 자신이 살해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24시간 내내
따라 다닙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이런 불안감이 없어 좋습니다."
나카지마씨는 두 번 다시 야쿠자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지금의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부인인
이성애씨에게 현재의 남편 모습에 대해서 말해 달라고 주문하자
장난끼어린 표정으로 깔깔대며 "돌탕요!"하고 말했다.
말의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그녀는 다시 웃으며 "돌아온
탕자요"라고 부연설명을 해줬다. 순간 나카지마씨의 얼굴을 보니 부인의
이같은 말에 이미 익숙해진 듯 다시 한번 일본어로 번역하여 스스로가
"그렇죠. 돌아온 탕자죠"라며 웃었다.
이번 영화제작의 비용은 총 4억5000만엔. 키네마 도쿄가 1억5000만엔,
나카지마씨가 5000만엔, 나머지 2억5000만엔은 일본인 기독교인들이
마련해 줬다. 오는 12월 25일에 신주쿠 후생성회관에서 정식으로
시사회를 갖는다. 한국 개봉은 내년 1ㆍ2월쯤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영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감독의 상상력이 들어가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게 전혀 통하지가 않았습니다. 진짜 야쿠자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죠. 덕분에 정말 이렇게 잔인한가 할 정도로
'리얼(real)'한 장면들이 많아요. 손가락이나 팔을 자르는 것 등을
경험자들이 조언해 주었으니까요." 이 영화를 만든 사이토 고이치(71)
감독은 "반면 가슴 찡한 내용도 많다"며 "한ㆍ일합작 영화로서
양국에서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이토 감독은 인간의 휴머니즘을 감동적으로 그리기로 유명한
연출자다. 한ㆍ일 양국의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일본에서는 중견배우 와타세 츠네히코, 상대 여배우역은 한국의
나영희씨가 맡아 열연했고 그 외에 윤유선, 정영숙씨 등도 출연했다.
특히 8명의 야쿠자들을 그리는 배역에는 일본에서도 내노라 하는 연기파
중견배우들이 대거 출연, 이 영화에 힘을 실어주었다.
"인간의 모든 군상이 다 나오는 영화입니다. 눈물과 감동, 폭력과
배신, 삶과 죽음, 그 리고 부부애, 가족간의 애증과 화해 등 전반적인
사회 문제까지 이 영화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아마 이 영화를 보시려면 손수건이 아닌 세면 타올이
필요할 겁니다. 그만큼 감동적인 인생들이 많아요." 나카지마씨는
자신의 인생을 그린 이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엔 한국의 역사의식 담아”
"야쿠자 출신인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인간은 언제든지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요. 설령 몇 번이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꼭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여러
사람들한테 전해주고 싶은 것 그 뿐입니다."
현재 나카지마씨는 일본어 학교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신학교는 한국과는 달리 소규모지만 그의 신학교에는 비교적 인원수가
많은 150명의 기독교인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야쿠자 오야붕인 형님이 절 제일 부러워해요. 하지만 거대한
조직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저처럼 뛰쳐나올 수가 없지요. 누군가가
'형님이 절 존경한다고 말했다'고 그러더군요. 그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가끔 형님과 만나기도 하고 옛날
동료들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물과 기름처럼 겉돌아요. 전
신앙을 가졌으니 술도 안 먹고 그리고 여자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으니까 자연 대화가 엇갈려요. 역시 살아가는 길이 다르니까요."
그의 앞으로 꿈은 목회자가 되어 한 사람이라도 더 신도수를 늘리는
것이며 내년부터는 전도사로서 개척교회를 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3남 1녀 중 유일하게 야쿠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형이 제일 먼저
신도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을 때 시집식구들이 너무
좋아 견딜 수 있었다는 이성애씨의 말처럼, 이들 가족은 일본에서도
드물게 형제애가 좋다고 한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야쿠자 오야붕인
형이 제작비를 대 준다고 했을 때 나카지마씨는 '마음만 받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범죄 소굴인 야쿠자의 실상을 그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아무리 친형이라지만 야쿠자의 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형도 그 심정을 헤아려 마음으로만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는 한국의 역사의식도 담았어요. 아마 일제 36년간을
경험하신 한국분들이 보시면 속이 후련하실 거예요." 인터뷰 마지막에
이성애씨가 당당하게 말했다. (유재순ㆍ르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