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서울의 영화관들은 저녁 일정 시각이 되면 잠시 상영을 중단해야
했다. 거의 모든 관객들이 한 일일연속극을 보려고 복도의 TV 쪽으로
우루루 나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50년의 '50대 히트상품' 목록에도
들어갔던 '여로', 바로 그 연속극이다. 바보 영구의 눈물나는 웃음으로
기억되는 전설적 드라마의 '그 때 그 멤버'들이 근 30년만에 다시 모여
'여로'를 무대에 올린다. 극단 세령이 이른바 '향수극'으로 꾸미는
'여로'(이남섭 원작, 김영호 극본, 김창래 연출) 서울 공연을 2월2일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가진다. 이에 앞서 광주(1월 19일~21일
문화예술회관) 부산 (1월 24~28 문화예술회관)에서 첫 테이프를 끊는다.

'돌아온 영구' 장욱제씨, 그리고 그의 아내 분이역 태현실씨를
연습장에서 만났다.

장욱제씨는 '여로'로 인기의 정점에 올랐을 때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사업에 뛰어들었었다. "꼭대기에 오른 사람에게 남은 일이라곤
내려오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어떠한 매체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니 근 30년만에 대중앞에 서는 것.

"'한번 끝낸 일'이라며 조용히 살려고 했었죠. 그런데 이 나이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젊은날 나를 그토록 아껴준 팬들이 나이 지긋해져서
다시 나를 찾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자는 생각을 했어요."

장욱제가 하도 꼭꼭 숨어서 살다보니 '이민갔다'는 정도는 기본이고
'죽었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났다. 올여름 어느 신문 기사에
'작고한 장욱제씨'라는 표현이 날 정도였다. 장씨는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도 싶어서 공연한다"고 했다.

태현실씨는 "연습하다 보니 타임머신 타고 20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했다. 태현실과 장욱제는 '운명적 사이'라는
말을 듣는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모두 1941년 11월 11일(음력)생이고
태어난 시까지 같다. 어머니 고향이 함경도 성진이란 것도 둘이 똑같다.
태현실씨는 "생년월일 같은 남녀가 결혼하면 천재가 나온다고 했다는데,
결혼은 못했어도 함께 주연해서 대히트작이 나온 것 아니냐"고 깔깔
웃었다.

그들은 '여로' 이야기는 과거완료가 아니라고 본다. 일제에서 6.25를
거치는 시기를 살아간 서민들의 눈물과 웃음을 그린 '여로'에서
국민들을 사로잡았던 분이와 영구의 애절하고도 순수한 사랑이 지금도
음미할만 하다고 했다.

태현실="분이는 한마디로 가시밭길을 살아간 한국 여성의 대표격
아녜요? 바보 남편에게 팔려오듯 시집와 혹독한 시집살이 당하며 울고,
남편과도 헤어지고…. 나는 지금 한국 여성과 며느리들도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공감은 마찬가지라고 봐요"

장욱제="고통속에서 나누는 둘의 사랑도 너무 예뻤고. 특히 금방
울었다 화났다 하는 바보의 순수함이 진한 페이소스로 다가와 관객들
가슴을 쳤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들 사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비추어볼
점도 있을거예요."

태현실씨는 "마음이 맑았던 그때 그 영혼들을 만나는 연습장에선 자주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장욱제씨는 30년간 사업을 해왔기 때문일까.
영구를 떠올리기 힘들 만큼 날카롭고 사려깊고 냉철한 '장욱제
사장'이었다. 얼굴도 10년은 젊어 보였다.

장="날카로움 같은 것 모두 뽑아버리고 옛날 영구 그대로, 옛날 그
억양 그대로 해야 하는데….

태현실씨는 대본 턱 받고는 탁 하고 연기가 나오던데 나는 늦어….”

태="아 왜 자꾸 문제있다고 그래요. 잘만 하던데….장욱제씨는 얼굴에
귀여움이 있어요, 연습중 출연진을 웃겨서 NG를 내게 하질 않나. 난 이
사람안에, 아직도, '영구'가 있는 것 같아요." (02) 3675-0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