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별개…
무차별 전파 네티즌ㆍ언론 상업성도 '문제'##
연예인도 사람이다.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 있고,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비록 공인이라는 '굴레'에 매여 있지만, 그들도 슬플 때 눈물을
흘리고, 기쁠 때 웃음을 터뜨리는 오감이 있다.
최근 가수 백지영의 '섹스 동영상'으로 연예인의 인권 보호에 대한
시각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현재 방송활동 중인 L씨 비디오, 미국에
칩거 중인 오현경씨 비디오, 2000년 하반기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백지영의 '섹스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번지면서 사회적인
자기 반성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백지영 사건'의 경우, 탤런트 심은하와 중년 사업가와의 열애설,
여고생 A양의 낙태설 등 지난 한 달 동안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린
'가십거리'의 절정을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섹스 동영상 인터넷
출현 합성이라는 당사자의 주장 ―상대 남성의 등장에 따른 극적인 반전
백지영의 몰래카메라 주장 기자회견' 등 일주일 남짓한 기간 안에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다. 그
때문에 미스코리아 누드 합성 사진으로 명예가 실추된 미스코리아는
음주운전을 한 가수 강타가 살려주고, 강타는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주병진이 살려주고, 주병진은 백지영이 살려줬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연예인 사건에 대해 언론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접근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SBS '한밤의 TV연예'의 경우
동영상 남자주인공의 인터뷰를 소개한 결과 한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관점에서만 다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TV뉴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B양 동영상 급속 확산' 등 선정적인 기사가
방송되기도 했다.
● "특히 여자 연예인 인권 침해 심각"
연예기사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는 스포츠신문의 경우 11월 21일 'B양
동영상 괴담 인터넷 사이트에 떴다'를 시작으로 말초적인 내용의 기사를
주로 생산해 냈다. 매일 거의 두세건 이상의 관련기사를 보도하는 태도
때문에 '옐로 저널'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SBS의 한 관계자는 "백지영씨의 비디오가 인터넷에 유포된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며 '한밤'은 이를 객관적으로 보도했을 뿐이다"며 "연예보도
역시 저널리즘의 한 부분이다. 오락이 목적인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교양
프로그램인 '한밤의 TV연예'의 공정한 보도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한 스포츠 신문 기자의 주장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각 매체마다 고유의 영역이 있다. 연예기사를 다루는
스포츠 신문에서 근거 있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TV방송이나 종합일간지 등에서 이와 같은 사건을 다루는 것이 문제다"
고 주장했다.
한편 백지영 사건 이후 연예인의 사생활 보호에 여론의 향방은 크게
양분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은 크게 "연예인의 사생활도
충분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연예인도 공인만큼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뉜 것.
특히 언론보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대중의 관음증적 태도와
이에 편승한 선정적인 언론보도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11월 29일 "여자 연예인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발표를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기자의 주장대로 이번 백지영 사건의 책임은 인터넷상에서
동영상을 유포시킨 네티즌들에게 있다는 말도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특히 라이코스코리아에서 네티즌을 대상으로 던진 "백지영 동영상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미 보았거나 구한다면
보겠다는 반응이 73%에 달했다는 설문 조사를 결과를 보면 대중들의
관음증적 습관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앞에서는 연예인의 사생활보호와 인권을 외치지만 뒤돌아서는
말초적인 관심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11월 27일 대기업인
D그룹의 메인서버가 한때 다운됐다거나,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
계열사에서는 공문이나 사내 통신을 통해 "백지영 파일을 유통하는
직원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단속을 나서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대중의 관음증 집착이 얼마나 심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사건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처럼 풀기 어려운
명제이다. 대중의 관음증적인 시각에 맞춰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의 보도에 따라 대중의 말초적인 신경이
자극받는 것인지 선후를 따지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검증되지 않은 소문, 한 개인의 인격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사회구성원이 힘을 합쳐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활동 중단이나 인터뷰 기피 등 '신비주의 전략'으로
상품성을 높이는 연예인의 경우 이른바 '설'의 희생물이 되기
십상이다. 이미 낙태한 여고생 스타가 K양이니, 벤처사업가 진승현씨가
사귄 연예인이 H양이니 하는 소문들은 실명까지 오르내리며 기정
사실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사건들의 경우 언론을 통한 기사나
당사자의 입장 표명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인데도 불구하고,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고 말았다. 결국 K양이나
H양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희생물이 되고 만 것이다. "장난 삼아 던진
돌에 한 연기자의 방송 생활이 끝나는 경우도 많다"는 한 매니저의 울분
역시 근거 있는 주장인 셈이다.
반대로 가십의 중심에 서있는 연예인에게도 문제는 많다. 여론 재판에
오른 당사자들이 자기 주장은커녕 변명조차 하지 않는 현실이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섹스 동영상'에 대한 백지영측의 무계획ㆍ
무책임한 태도가 실례이다. 처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동영상이
번지기 시작한 시점에는 합성이라고 주장하다가, 상대 남성의 등장으로
'몰카'라는 변명을 하기까지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도 일관했다. 이런
수순을 지켜본 방송가에서는 차라리 사건 초기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더라면 동영상이 유통되는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주장은 백지영의 기자회견 이후 동정론에서 비판론으로 반전된
네티즌들의 반응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현재 백지영 관련 홈페이지
게시판의 경우 하루 약 500건 이상의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다. 다음
카페의 경우 '백지영 살리기, 김시원 죽이기' 등 백지영에게 우호적인
카페가 생겨나는 등 동정론이 여전히 앞서고 있지만, 기자회견장에서
보여진 백지영 측의 태도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을 선별적으로 회견장에 입장시킨 행태나
눈물을 애써 흘리는 듯한 백지영의 태도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덮으려는 전략이 소문 근원지
반대로 연예가에서는 백지영의 이런 반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반응이다. 그간 백지영의 태도로 미루어보면 연예 활동을 중단하는
선언을 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든 영화에
출연하든 어떤 형태로라도 연예계 활동을 계속할 심산이어서 최소한의
'상품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매니저와 기자, 매니저와 방송PD, 연예인과 언론 종사자들끼리
'상부상조'하는 현재의 분위기에서는 그간 쌓아온 이미지를 지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연예계는 '한방'으로 일컬어지는 일확천금의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다. 데뷔한 지 몇 개월만에 수억원의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곳이니
매력이 있는 곳이기는 하다. 백지영 역시 1년반만에 톱스타의 대열에
올라선 예이다. 물론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피나는 노력 끝에 부와
명예를 얻은 스타들도 많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음주운전 경력'이나
'연인과의 이별'이 그간 쌓아온 공든 탑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곳이 연예계이다.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가십이라도 함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연예인들의 현실이다. 혹시 방송이나 언론에
밉보였다가는 자신의 연예 생명이 끝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4년차 연기자는 "방송사 공채도 마찬가지겠지만 나같이 아는
사람이 없이 연기를 시작한 사람은 힘든 일이 많다. 연예계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람과의 문제가 가장 힘들다. 잘못된 기사나 나쁜 기사가
언론에 보도되더라도 참는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한편 한 방송연출가는 "처음 유통시킨 사이트의 개설자 등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연일 보도를 한 언론 역시 책임을 면할
수없다"고 말한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아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애청자의 전화가 있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연예인의 도덕성, 그에 따른 기사 양산 등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미명하에 시의에 편승한 언론의 상업적인
전략이라는 사실 역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백지영 사건 초기 여론은 지극히 동정론적 시각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론이 백지영의 인권을 보호하는 척하면서도 적당히 상업적인
상술을 견지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번 백지영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백지영 단 한사람 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언론을 포함한 모든 국민은 농담거리를 얻었든,
판매부수를 올렸든 이익을 본 측일 것이다. 국민들은 스타의 섹스
동영상에 열광한 것이고, 언론은 예기치 못한 호황을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