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모 아닌 장르 일컬어…모두 5막에 2막부턴 발레가 꼭 나와야 ##
우리는 지면이나 포스터 등에서 종종 '그랜드 오페라(Grand Opera)'라고
적힌 말을 무심결에 접한다. 예를 들면 '누구의 그랜드 오페라 무엇'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그랜드 오페라란 과연 무슨 말일까?
오페라가 크면 다 그랜드 오페라일까?
그랜드 오페라란 큰 오페라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그랜드 오페라'란
이름의 형식, 즉 하나의 장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오페라의 규모가
크거나, 많은 출연자가 나오거나, 거액의 제작비를 들였다고 해서 다
그랜드 오페라가 아닌 것이다.
일전에 어느 오페라 단체에서 자신들의 공연에 대해 직접 '그랜드
오페라―나비부인'이라고 부르는 우를 범했다. 물론 나비부인은
그랜드 오페라가 아니다. 심지어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ㆍ희가극)의 양식인 비제의 '카르멘'조차도 그랜드 오페라라고
광고한 적이 있었다. 과연 이런 단체가 오페라의 정신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얼마 전 국영 TV의 가뭄에 콩나는 듯한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아이다'와 같은 그랜드 오페라가~" 하는 말을 했었다.
'아이다'는 정말로 큰 오페라이지만, 그랜드 오페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랜드 오페라는 19세기에 프랑스의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오페라의
한 형태를 말한다. 불어로는 '그랑 오페라'라고 한다. 당시엔
이탈리아식의 멜로드라마(Melodrama)도 프랑스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파리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오페라를 원했다. 그리하여 당시
파리에서 선보인 오페라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오페라는 먼저 화려해야 했다. 그래서 무대 위에는 거대한
장치와 번쩍거리는 소품들이 등장했고, 규모가 커졌다. 또한 발레나
막간극도 들어가야 했다. 이런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연애물
같은 소재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소재도 장대해야 했고 등장인물도
많아야 했다.
그리하여 규칙이 만들어졌고, 그 규칙에 맞는 작품만 그랜드 오페라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먼저 그랜드 오페라는 5막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소재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스펙터클한
역사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트로이의 전쟁(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이라던가, 생 바르톨로뮤의 대학살 사건(마이어베어의
'위그노 교도'), 바스코 다 가마의 신대륙 항해(마이어베어의
'아프리카의 여인')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출연자의 수도 상당히
많고, 주역만도 5~6명에 달하여 소설로 치자면 대하소설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물론 화려하고 큰 무대와 많은 등장 엑스트라 등도 역시 기본
요소들이다. 그리고 꼭 발레 장면이 들어가서 파리인들의 구미를
맞추었다.
또한 그랜드 오페라는 각 막마다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1막은
간단한 서막으로서 예술적으로는 별다른 비중이 없다. 설혹 1막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2막부터의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불편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연회나 오페라에 늦게 도착하던 당시의 파리 부인들의 풍습을
반영한 것이었다.
2막부터는 꼭 발레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3막에서는 내용이 고조되다가
후반부에서는 이른 바 규모가 큰 스펙터클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은 베르디의 '아이다'의 개선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아이다'는
엄연히 그랜드 오페라가 아니라 이탈리아 멜로드라마이지만, 이 개선
장면은 그랜드 오페라의 영향을 크게 받은 대목이다. 3막의 라스트는
스펙터클신(scene)의 피날레가 되어 막이 내린다. 4막은 성악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부터 주인공들은 갈등이 고조된 상태에서 폭발하듯이
중요한 아리아와 2중창들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 오페라를
대표할 만한 명곡들이 등장하고, 성악가들도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대목이다. 5막은 대단원이다. 음악보다는 결말을 위해
그 동안 펼쳐 놓았던 스토리들을 어서 어서 주워담기에 급해진다.
이렇듯 그랜드 오페라란 여러 오페라 중에서도 단연 매력이 있으며,
형식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 장르인 것이다. 그것은 실로 공연과 여흥에
관한 인간 아이디어의 절정이었다.
(박종호 신경정신과 전문의ㆍ오페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