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감독의 '찍히면 죽는다'(26일 개봉) 진짜 이름은 '나는
네가 스너프 필름을 찍으며 한 일을 알고 있다'이다. 고교생들이
불의의 사고를 은폐하려다 겪는 참극이란 기본 모티브에서부터 살인범
옷 모양까지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그대로
따온 이 영화는 정작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세부 묘사와 최소한의
설득력은 빌어오지 못했다.
학교에서 따돌림받던 성욱은 친구들과 별장에 놀러간다.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들은 사정없이 칼로 그를 찌른다. 가짜 스너프 필름(실제
살인을 담은 영화)을 찍기 위한 장난이었지만 실수로 성욱이 진짜
살해된다. 급우들은 시체를 유기한 뒤 돌아오지만 얼마 뒤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이 영화는 흥미로운 초반 설정과 젊고 잘생긴 배우들의 등장으로
시선을 끈다. 출연진이 전부 신인이라 누가 살아남을지 단정하기 어려운
재미도 있다. 칼날을 잡고 있다 추락사하는 장면이나 잘린 오른손이
도축장 갈고리에 매달려 울리는 핸드폰을 쥐고 있는 장면처럼, 인상적인
공포영화적 상황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찍히면 죽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엔 구멍이 너무도 많다.
시체 하나도 묻을 수 없을 정도로 얕게 판 이야기 속엔 공포는 없고
살인만 빼곡하다. 신출귀몰하는 살인범까지는 그렇다 쳐도, 등장 인물들
행동 속에 일관성이나 설득력 대신 오로지 '살해당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확인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제목과 달리 '안 찍혀도 죽이는' 반칙을 저지른다.
공포영화에서 공간 활용술이 긴장 극대화를 위해 무척 중요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별장과 학교, 아파트와 도축장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그저 인물이 놓여 있는 배경으로만 등장시킨다.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것 같지만 캐릭터나 대사가 과장되고 일면적이어서 겉치레처럼
느껴진다.
'하피'에서 '가위' '해변으로 가다'를 지나 '찍히면 죽는다'에
이르는 올 여름 충무로 공포영화 붐의 실체는 참 앙상하다. 잘생긴 젊은
배우들을 무더기로 몰아넣은 뒤, 공포영화 공식을 직설적으로 대입하고,
적당히 관음증을 자극하는 장면을 삽입하며, 인터넷이나 비디오 화면
혹은 전화 통화 장면을 유행처럼 집어넣는다고 충무로 공포영화가 할리우드
호러가 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이동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