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본주의 기본 상실한 "미국식 민주주의" 허상 고발 ##

●셰헤라자드
아사다 지로 지음
베틀북

아사다 지로(49)의 장편소설 '셰헤라자드'(상·하 2권,베틀북)가
나왔다. 시대적 배경은 2차대전 막바지 몇년간, 그리고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흘러버린 90년대 후반 몇년간이다.

경제대국을 일구어 번영을 구가하는 요즈음의 어느날 일본의 수도
도쿄에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중국인 송영명. 이 의문의 노신사는
일본 최고의 폭력단 야쿠자 두목과 정·재계인사들을 움직여 보물선
'미륵호'의 인양을 꾀한다.

원래 태평양 항로의 호화 여객선으로 건조된 미륵호는 전쟁의 심화로
취항조차 못해본 채 일본군에 징발돼 4년 동안 병원선으로 떠돈다.
1945년 전쟁 말기, 미륵호는 국제 적십자사의 구호물자를 싣고 남방
해역의 일본군 점령하에 있는 연합군 포로 수용소를 돌아다니는 특수
임무를 맡게 된다. 일본군과 미군 사이에 맺어진 비밀 협약에 의한
구호품 수송 작전이었으나, 그뒤에는 일본 군부의 엄청난 계획이 숨어
있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물론 승선 장교까지 까맣게 몰랐던 일본군의 극비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결국 미륵호는 2300명의 무고한 목숨과 대량의
금괴를 실은 채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대만 해협 깊은 바닷
속으로 침몰하게 되는데….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의문에 핵심에 다가서는 전직
은행지점장 가루베(46), 그의 옛애인이자 유력신문사 여기자 출신인
히사미쓰(38).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점점 묘하게만 꼬여가고.

이 소설은 오늘날 대만과 대륙의 관계, 2차대전 당시 안전항해를
보장받은 배를 침몰시킨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미국의 책임, 2000명의
희생자 보상문제, 시가 2조 엔의 금괴가 인양되면 어디로 귀속될
것인가의 문제 등(상178쪽) 허구적 장치로 설정된 국제 정치적 상황을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기에 '사람의 목숨이 가벼웠던 시대를 살아온 남자들'의 세계,
기막힌 상황 속에 15년만에 재회한 주인공 남녀의 에둘러 가는 사랑,
'인간은 할 일이 없어지면 죽는 법이지만, 살아 있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인생역정의 철학이 적절하게 녹아 있다.

아사다 지로는 대중잡지에 연재를 시작하여 서른여섯 늦깎이로
데뷔했다. 1991년 20대의 야쿠자 체험이 담긴 피카레스크 소설
'찬란한 황금빛'을 펴내면서 이름을 날렸다. 1995년 장편 '지하철을
타고'로 제16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7년
첫 소설집 '철도원'으로 제117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은빛비', '낯선 아내에게' 등이 있다.

(※'셰헤라자드'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왕비 이름이자,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곡명. 미륵호의
선원들이 듣게 되는 이 곡은 소설의 배경 음악이 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