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운명은 왜 이렇게 어긋나고 말았나" ##
이제 충무로 영화인들은 작품 완성도를 놓고 제작비 핑계를 대기
어렵게 됐다.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7월15일 개봉)가
나왔으니까.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가 쓰고 남긴 자투리 필름에
자비 400만원을 들여 97년 단편 '패싸움'을 만들고, 이후 게릴라식으로
나머지 부분들을 차례로 완성한 이 영화는 16㎜ 필름의 거친 영상과
독립영화 제작의 열악함을 재능과 의지로 극복한 드문 예가 됐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영화는 각각의 부분이 완결적이면서도 전체로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도록 짜여졌다. 이소룡과 성룡에 매혹되고부터
영화에 빠져들었다는 스물일곱살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의 네 부분을 액션과
호러, 세미 다큐와 갱스터라는 서로 다른 장르로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한편 안에서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색적 형식에 대한
그의 설명. 고교 시절 패싸움을 벌이다가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깡패와
경찰로 운명이 갈린 두 친구 삶을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아닌게 아니라 '따로 또 같이'의 독특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당구장 주인의 냉소적 발언과 고교생 패싸움을 현란하게 갈마들며 편집한
1부, 전과자에 대한 냉대와 살인에 대한 악몽을 몇개의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한 2부, 형사와 깡패의 격투 사이에 당사자의 인터뷰 내용을 유사
다큐멘터리로 녹여넣은 3부, 뛰어난 사실감으로 대파국을 그려낸 4부는
서로 다른 형식으로 분방하게 '따로' 놀다가 어느 순간 '같이' 모여
거대한 비극을 구성하면서 묵직한 주제를 펼쳐낸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분명 '액션' 영화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액션 영화'는 아니다. 양식적이고 스타일이 뛰어난 액션에서
개싸움같은 난투극을 거쳐, 마침내 판타지를 거세한 뒤 핏물 뚝뚝 떨어지는
사실적 하드 보일드에 이를 때, 이 영화의 폭력적인 장면들은 지독한
현실감으로 폭력을 경계하는 계몽성을 직접 체현하며 메시지를 강렬히
드러낸다. 뒷골목 언어를 생생히 살린 대사에 적당한 유머까지 갖춘
영상언어는 종국에 이르러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탄식, 삶을 멋대로
휘저은 채 엇나가기만 하는 운명에 대한 한숨을 길게 토해낸다.
충무로에서 영화 한 편에 40억원씩 돈을 쏟아붓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독립영화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기적이다. 연출 각본 주연 무술 지도를 한꺼번에 다 해낸
류승완 감독의 능력과 열정에, 영화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화답한 수많은
스탭들 선의가 어우러져 기적에 이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그 기적의 계단이
관객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흥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제
이 영화가 걸어갈 길은 두 갈래. (기적이) 이뤄지거나 혹은 (이뤄지지
않더라도) 신화로 남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