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서 '잘 나가는' 카페 G. 김민희(18)는 1층
안쪽 소파에 파묻혀 있었다. 아니, 소파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TV에선 강마르고 키도 훌쩍 커보이더니, 몸집이
자그마하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기잡니다." 매니저와 코디네이터는
엉덩이를 들썩하며 아는 체 하는데, 김민희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는다. 쌀쌀맞긴. 요즘 채널마다 나오는 CF에서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하고 앙칼지게 외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지하에 있는 방으로 옮기기로 했다. 손바닥만한 얼굴부터
발끝까지, 일어나는 데 한참 걸린다. 170㎝니까 키는 큰 편이지만,
워낙 앉은 키가 작아 그런듯 싶다. 시계 바늘은 낮 1시 5분에서
겹치고 있었다. 세 평쯤 되는 방이 진공 상태인 양 답답했다.
"점심 먹었어요?" 질문을 던지곤 '의례적이고 썰렁하군'
하는 후회가 든다. 집에서 먹고 나왔단다. "바쁠텐데 이제 집에서
나와요?" 묻자 "지금 심문하는 겁니까?" 한다. '합니까'체가
사뭇 '호전적'이다. 분위기를 달래느라 딴소리를 여러 마디 해야
했다. 표정이 약간 풀어지며 '헤헤' 웃는다. 다행이다.
"이렇게 한번 해보죠. 인터뷰가 아니라 소개팅 나왔다 치고
이야길 해봐요. 어때요?" 그제서야 눈동자에 생기가 돈다. 대뜸
"저 같은 연예인이 결혼 상대로 어떠세요?" 한다. 햐, 이것
봐라. 재미있어진다.
정색하고 '소신껏' 말하는데 쿡, 웃는다. "근데여('요'가
아니라), 남자가여, 집안 이야기하면, 여자가 맘에 들고 좋아한다는
뜻이래여. 그래서 웃은 거예여." 말이 풀리니까 술술 나온다.
"근데여, 소개팅에서 남자가 그렇게 말 많이 하면 안된대여."
김민희는 하교길 교문 앞에서 '픽업'돼 연예계에 발을 딛었다.
신광여고 1학년이던 재작년, '하복 입었을 때'란다. "그날 친구하고
쇼핑 가기로 약속했거든요. 책가방 다 싸놓고 있다가 종례 끝나자마자
뛰어나갔어요. 그런데 교문 앞에 손가방 든 아저씨가 부르더니, CF
모델을 구하는데 새 얼굴을 찾는다면서 일할 생각이 있냐고 하더라구요."
가만히 듣다가 "아저씨 사기꾼 아니에요?" 하고 물었단다. 삐삐
번호를 알려주는 사이, 옆에 있던 친구가 "아저씨, 저는요?" 하니까
"넌 눈이 작아서 안돼" 하더란다. 어쩌나 싶어 전화 안하고 있었더니,
이틀만에 연락이 왔다. "괜히 먼저 연락하긴 싫더라"고 했다.
화장품 CF 엑스트라로 시작해, 한솔PCS CF로 떴다. KBS 드라마
'학교'에서 부시시한 머리스타일로 중성적 매력을 풍겼다. 요즘
다시 한솔PCS CF로 돌아왔다. 끄트머리에 "사랑은 움직이는거아
('거야'가 아니라)" 하는데, 주변에서 그 분위기가 '딱 너다'
한단다.
"만약 그날 매니저가 다른 학교에 갔더라면 어떻게 됐겠느냐"고
물었다. "그냥 단발머리 하고 화장도 안하고, 교복 입고 학교 다녔겠죠,
뭐." 요즘 학교는 거의 못간다. 가도 담임과 '상담'만 하고 온다.
하긴 '진도'도 이미 따라갈 범위를 넘었겠다. "이달 초에도 갔다
왔어요. 담임 선생님이 긍정적이세요. 소질 있는 쪽에 투자하는 거니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김민희는 드라마 '학교'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생머리를
옅은 갈색으로 물들이고, 앞머리는 어슷하게 잘라냈다. 무늬 없는 빨강
반팔 티셔츠에, 개량 한복 느낌을 주는 노랑 치마를 입었다. 녹색 구두엔
솔방울 같은 장식이 달렸다. 눈꺼풀 위로는 연녹색 분을 발랐다.
"화장을 직접 해요. 재미있어요. 메이크업 전문 언니들도 저더러
화장 잘한대요." 자랑할 때는 누구나 신이 나는 법이다. 내친 김에
물어봤다. "아까 첫 인상은 되게 쌀쌀해 보였어요." "그렇게 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괜찮아요.
그게 아닌데요, 뭐."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야, 김민희다. 정말 예쁘다" 하기도
하지만, "쟤, 김민희 아냐?" 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단다.
열중 두엇은 흉보는 투로 수군거린다. "그게 내 매력인가봐요. 내
나이에 할 수 없는 일, 패션, 행동을 하니까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겠죠." 사진 촬영을 마치더니 풀었던 머리를 뒤로 올려 질끈 묶고
앞머리도 핀으로 올려 붙인다. "일 끝나면 머리를 이렇게 해야 돼요.
안 그러면 찜찜해 못견뎌요."
"소개팅 끝낼 시간이 됐네요. 다음에 또 만나줄 거예요?" 하고
물어봤다. "물론이죠" 하더니 되묻는다. "개인적으로요?" "그럼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건…좀 생각해봐야겠는데요" 하며 깔깔
웃는다.
카페 1층에선 방송사 사람들이 김민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를
나서면서 "나도 개인적으로 만나는 건 좀 생각해봐야겠는데요" 하고
혼자 중얼거려봤다. 봄 기운이 훅 끼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