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81회 동창회장 신원정(34·삼성증권 M&A팀 과장)씨는 최근 열린
동기회에서 평소의 2배로 늘어난 참가 인원을 보고 깜짝 놀랐다. 1차 맥주
집에 모인 사람이 100명, 마지막 차수까지 찾아온 사람들을 합하면 모두
200여 명에 달했다.
『동창회 사이트를 통해 동기 모임을 공고했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모두 이 사이트를 보고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사이버 공동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뤄지던 우리 사회가 통신과 인터넷의 등장에 따라 「넷연(Net연)」으로
대체되고 있는 양상이다. 야후나 심마니, 네이버, 라이코스 같은 주요
검색엔진 등을 통해 확인된 「사이버 동호인 모임」은 현재 줄잡아 2000여개.
각종 주제와 명목으로 이뤄진 이 동호회에 「넷-가족」수백만명이 인연을
맺고 새로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21일 현재 「야후 코리아」에 올라있는 동창회 사이트는 모두 177개. 3일
전에 비해 4개가 늘었다. 『사이버 동창회 개설 이후 동문들 소식이나 동정
등이 더욱 많이 들어오는 등 동창회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습니다.』(부산
가야고 동창회 총무 전종길·34)
하버드, 시카고 등 미국 유명 MBA 졸업자들이 운영하는 「톱 비즈니스 스쿨
클럽」은 학교 울타리를 갓 벗어난 젊은 경영 전문인 50여 명의 모임이다.
회원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서 배운 노하우들을 공유하고, 공통 관심사에
대한 사업 논의도 한다』고 했다.
사이버 공동체는 주제에 제한이 없다. 「철조망」이란 동호회는 모터
사이클(오토바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535명의 회원을 보유한
「철조망」은 오토바이 사고 팔기, 단체 드라이브 등의 정보를 제공하며
전국적인 동호회망을 연결하고 있다. 애완견 사이버 묘지 사이트 「아롱이
천국」을 운영하고 있는 현상철씨는 『오래된 동호인들은 가족 같이
친해졌다』며 『곧 동호인들끼리 애완견 합동 추모회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삼 정보를 공유하거나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 사회봉사 동호회,
고등학생들의 국악동아리, 교사들의 대안 교육 모임, 방송인 등 특정 직장인이
되기 위한 준비 모임 등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사이버 모임이 집단화되면서 현실사회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최근 부패 정치인 낙천운동을 전개하는 배경에는 사이버족들의
지지가 숨어있다. 군필자 가산점제도 위헌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사이버
세대의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다. 녹색연합 김타균 정책부장은 『사이버
시민파워는 점차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돼 국가정책까지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는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내는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의 확대는 21세기 최대의 혁명적 사건』이라며
『익명성에 숨어 무책임한 말을 쏟아놓는 사이버 테러 등 일부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