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스타들을 만나 인터뷰 하다보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볼 때가 많다. 무성의하게 시간만 때우려는 일도 있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려
들거나 무식하고 무례한 경우도 적잖다.

맷 데이먼은 그러나 예측했던 대로였다. '라이언 일병' '라운더스'
'레인메이커'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는 하버드 대학 우등생 출신.
'굿 윌 헌팅' 각본을 직접 쓰는 등 지적인 면모를 보여온 그는 아주 성실한
태도로 답변해 신뢰를 주었고, 종종 수줍어하며 살짝살짝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된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주연 맷 데이먼을 11일 오후 베를린 포 시즌스 호텔에서 만났다. 영화에서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그는 콜라를 병째로 홀짝이며 "작품을 고를 때 무엇보다
시나리오를 중요하게 본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 을 새로 만든 이 영화에서 그는 선박 재벌
2세와 그의 애인에게 접근하는 청년 리플리 역을 맡았다. 알랑 들롱이 차가운
미남 매력을 마력적으로 발휘했던 바로 그 역이다. 그러나 '태양은…' 주인공과
달리 평범하고 모범생 외모의 '리플리', 맷 데이먼은 명문 프린스턴대학
출신으로 자기 신분을 속이고 재벌 2세에 접근, 완전 범죄를 꿈꾼다.

영화 광고 문구인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되길 바란 적이 있습니까"란
질문을 그대로 던져봤다.

"물론이죠. 전 몽상가니까요. 어린 시절엔 정말 메이저 리그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소방수나 우주비행사도요. '굿 윌 헌팅'에도 그런 어린
시절 몽상이 들어있지요. 어려운 수학 문제도 척척 풀고, 책도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다른 연기파 배우나 톱 스타를 꿈꾼 적은?
"다른 누구처럼 되길 바란 적은 없었다"는 그는 "다만 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현명하게 응수한다.

평범한 조연급 배우였던 그는 97년 '굿 윌 헌팅'과 '레인메이커'로
크게 각광받으면서 일약 스타로 등극했다. 그 뒤 '라운더스'의 도박사,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라이언 일병, '도그마'의 냉소적 천사 역할에서
신작 '리플리'까지 점점 연기폭을 넓혀가고 있다. '리플리'는 양성애자에,
거짓말을 감추려 살인을 거듭하는 사람. 그는 "그런 배역을 맡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성정체성을 오해 받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라 인정하면서도
"시나리오가 무척 좋았고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연출했던 감독 앤소니
밍겔라를 믿었기에 흔쾌히 응했다"고 설명했다.

자기의 분신처럼 연기해낸 리플리에게서 자신의 어떤 모습을 읽어낼까.
"무엇보다 아웃사이더란 점이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한 그는 "외롭다는
점도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있고, 미니 드라이버와
클레어 데인즈를 거쳐 위노나 라이더와 열렬히 사귀고 있는 그가 외롭다고?
데이먼은 "좋은 친구들과 가족이 있는 난 분명 행운아지만 종종 외롭다"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순간도 있지만, 그런 시간은 길어야 15분
정도"라고 말했다. "베를린에 도착해서 선글래스도 쓰지 않은 채 거리를
돌아다녔는데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더라"는 그는 "심지어 뉴욕서도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면 주변에서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 평범이야말로
영화에서마다 반 영웅을 그려낸 그의 힘이다.

인터뷰 자리에서 맷 데이먼은 "다른 배우들을 자주 흉내낸다"고 말 꺼냈다가
인간적 면모를 드러냈다. 같이 자리한 유럽 기자 5명과 함께 "한번 해보라"고
하자 잠시 망설이던 그는 "모두 눈 감아달라"고 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제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가성에 가까운 높은 톤으로 흉내낸
인물을 아무도 누군지 알지 못하는 썰렁한 상황이 왔다. 조금 당황한 듯
"당신들이 미국인이 아니라서 모르는가 보다"고 둘러대던 그에게 "그럼
말론 브랜도를 한번 흉내내보지" 했다. 그는 반색하며 "브랜도는 누구나
다 흉내내려 해 재미없지만 한번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얼마나 비슷하냐고? 100점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었다.
맷 데이먼의 전매특허랄, 수줍은 미소 만큼은 100점에 가까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