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는 사악한 영화들이
있다. 이른바 '스너프(snuff)필름'이라 불리는 영화들. 이 잔혹한
시각적 쾌락의 희생자가 다름 아닌 나라고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어떤 심정일까? '떼시스'나 '무언의 목격자'는 그런 발상에서
출발하는 스릴러 영화다.
조니 뎁의 감독 데뷔작 '브레이브(The Brave)'도 스너프 필름을
주요 모티브로 삼은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미스터리적 요소는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대신 휴머니즘 가득한 서정성을
끌어안으려 애쓴다.
인디언 혈통을 이어받은 라파엘이 '브레이브'의 주인공. 그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이건만 별다른 직업도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이들 일가는 그나마 터를 잡고 있는 사막 근처 쓰레기
하치장에서도 조만간 쫓겨날 처지다. 결국 라파엘은 가족을 위해
'용감하게'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는다. 5만달러를 대가로
스너프 필름에 출연하기로 한다.
과연 라파엘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사나이일까?
라파엘 자신은 영혼을 판 게 아니라 단지 창녀처럼 육체를 판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위해 비록 자신의 비루한 몸뚱아리는
버릴지언정 마음마저 방기하진 않는 '고결한 창녀'처럼 말이다.
'자살'의 날까지 1주일 말미를 얻은 라파엘.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아들에게 가장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고 진정한 용기를
물려주려 한다. '브레이브'는 라파엘의 삶에서 짧지만 어쩌면
가장 농밀한 시기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겠다.
그동안 조니 뎁이 함께 작업한 감독들, 그가 맡은 캐릭터들을
상기해본다면, 그가 얼마나 주류라는 것으로부터 멀리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브레이브'는 감독으로서도 그가 주류 할리우드와
거리를 두려는 의식적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꽤 멋진
초반부 이후로 영화는 자꾸 상투적인 할리우드 멜러드라마로
방향을 틀기에 아쉬움이 크다. 조니 뎁이 짐 자무쉬(데드 맨)가
되려면 더 부지런히 감독 수업에 정진해야 할 것 같다.
( 홍성남·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