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험해보라...열등한 문화는 없다"...제국주의 공범이란 비판도 ##
말리노프스키는 처음으로 현지언어에 숙달하여 장기적 참여관찰을
실천함으로써 전문적인 문화인류학의 현지조사(fieldwork) 방법을
'창출'하였다. 그 때까지 탐험가나 여행자들이 수집한 자료를 안락의자에
앉아서 분석하던 인류학자들은 이제 직접 현지에 가서 장기간 참여관찰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지 않고는 행세할 수 없게 되었다.
말리노프스키는 남태평양 트로브리안드 섬에 장기간 머물면서 현지인들의 문화를 연구하여 새로운 인류학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그에게 '현지'는 단순히 미개인을 만나 이들의 이상야릇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곳이 아니라 마치 자연과학자의 실험실 같은 곳이었다.
그는 인류학자는 현지민의 삶의 방식에 몰입해야 하며 적합하고 가능한
것에는 무엇이든 참여하며 또한 현지민의 상호작용과 행동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현지언어의 숙달은 필수적이고, 최소
1년간은 현지에 머물며 계절적 변이를 전부 경험해야 했다. 이러한
현지조사가 얼마나 커다란 고통과 어려움을 수반하는 것이었는가는 그의
사후에 출판된 일기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말리노프스키는 인류학자들이
'미개인'들의 현재의 삶을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개인'들은
진화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선사시대의 모습을 알려주는 일종의 유물이
아니며 그들의 삶 자체가 학술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화의 여러 측면들이 어떻게 기능하나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인류진화사의
재구성작업이나 사회문화 제도나 현상의 기원에 대한 탐구에는 반대하였다.
말리노프스키는 남태평양 트로브리안드 섬에 장기간 체재한 결과 사회가
통합되어 있는 모습을 매우 잘 관찰한 결과, 외부인에게는 이상하고 어색하게
보이는 문화 요소나 제도, 관습들이 그 맥락 내에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나름대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문화는 '통합된
전체'로서, 비교를 위해 함부로 하나의 요소나 측면을 그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분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문화란 생식과 안전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기본적 욕구' 혹은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기능하며, 사회통제나 통합 등 제1차 욕구에 못지 않게 강력한 파생적
욕구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았다.
말리노프스키는 기능주의라는 설명틀을 사용하였으나 개인의 전략도
생생히 묘사하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서태평양의 항해자들'(1922)은
언뜻 보기에는 이상야릇한 제도인 '쿨라'(kula)라는 의례적 교환체계가 어떻게
사회적 상황에 맞아들어가면서 제1차 욕구들을 만족시키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과학의 다른 기능주의 저작과는 달리 그의 저작에 나타나는 인간들은 전혀
로봇이 아니다. 그들은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회적 기대나 규범을 부분적,
조건적으로만 받아들이거나 때로는 교묘히 회피,이용하는 대단히 지적이고
욕망과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이다.
그는 전통사회의 붕괴나 식민통치의 파괴적 영향을 무시한 제국주의의
공범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인류학 지식의 응용이 서구
자본주의와 식민통치의 불필요한 고통과 낭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 역설하였으며, 식민지 관리나 선교사 등과 힘을 합쳐 국제아프리카연구소
(IAI)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말리노프스키의 인류학은 서구를 인류 문명의
최고단계로 간주하고 있던 식민통치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의
인류학은 미개인들이 서구인 못지 않은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들의 문화를 서구의 척도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인가를 끊임없이
지적하였다. 특히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은 서구문명의 우월성과 서구적
가치의 보편성에 대한 서구인들의 확신을 뒤흔들어놓았다. (한경구/강원대교수·
문화인류학)
'한교수 약력'
▲1956년 출생 ▲서울대 인류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학 박사
▲강원대 교수
▲저서 '공동체로서의 회사' 역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문화인류학 현지조사방법' '정치인류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