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8월23일 서울 시민들은 「무장공비」 출현 소식에 경악했다.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124군 부대가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했던
1ㆍ21사태의 기억이 뇌리에서 채 잊혀지기도 전이었다. 이들은 인천
앞바다 실미도에서 훈련중이던 특수 부대원 23명으로 밝혀졌다.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들어오면서 곳곳에서 교전을 벌이다,
영등포에서 자폭했다.
실미도 특수부대 요원 훈련을 맡았던 공군 기간병들. 전원 사살되거나 사형대에 오른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은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실미도 사건」은 작년 KBS 주말극 「야망의 전설」에서 최수종이
특수부대원으로 나오면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MBC 「이제는 말할
수있다」는 19일 밤11시55분 여전히 베일에 쌓인 「실미도 사건」
실체에 접근한다.
당시 특수부대원 23명 중 생존자 4명은 사형대에 올랐기 때문에
「실미도 사건」을 증언해줄 당사자는 없다. 제작진은 당시 사망한
특수부대원 가족을 찾아나섰지만 허사였다. 대신 실미도에서 특수부대원
훈련을 맡았던 공군 장병 10여명을 수소문해, 당시 사건을 복원해냈다.
실미도 부대 창설은 68년4월. 1·21사태에 격분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지시에 따라 연고가 없는 군교도소 사형수나 무기수, 민간 교도소
중범죄자에서 31명을 선발했다. 7명이 도중에 사망했을 정도로 지옥같은
훈련이 가해졌다. 이들의 목표는 1·21 사태때 침투했던 124군을 능가하는
것. TV와 라디오, 신문은 물론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됐다. 훈련을 견디다
못해 인근 마을로 도망간 부대원중에는 주민을 인질로 잡고, 마을 처녀를
강간하다가 사살되기도 했다.
훈련 3개월안에 북한에 침투, 김일성 주석궁에 보복을 가한다는 계획은
3년4개월동안 연기됐다. 두 차례 서해안 접경 지역까지 이동했지만 북한
침투는 마지막 단계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단됐다. 임무를 완수한 후
보상을 기대했던 이들은 「폭발」했다. 실미도에서 이들을 훈련시키던 장병
18명을 죽이고 섬을 탈출했다. 화장실에 숨거나 바위틈에 들어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는 6명에 불과했다. 증언에 나선 이들은 『전우를 죽인
특수부대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실미도를 찾은 이들은
당시 부대 자취를 더듬었다. 사건 직후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부대 현장을
폭파했지만, 실미도에는 침투 훈련을 위한 평양 지형 모형과 탄피, 작업화가
뒹굴고 있었다.
제작진은 「실미도 부대」 창설에 기이한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부대원을
31명으로 정한 것도, 김신조 부대가 31명이었기 때문이란 것. 「유격사령부」란
견장도 124군이 「중앙유격사령부」란 견장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실미도 사건 당시 공군참모총장이던 김두만 장군이 『정규 군인중에서
부대원을 뽑지, 왜 범죄자들로 구성했느냐』고 묻자, 중앙정보부 요원이 했다는
말은 실소를 자아낸다. 범죄자들을 뽑아, 독일군 진지에 투입하는 전쟁
영화에서 착상을 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군이 「실미도 사건」 진상을
공개하지 않고 아직까지 비밀에 부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