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호텔!" 지난 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눈에
띠었던 대형 포스터 문안이다. 그 포스터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 젊은 여가수가 쓴 책을 광고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백인
여가수가 전시장 한구석에 작은 무대를 만들어 놓고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치렁 치렁한 갈색 머리에 우물처럼 깊은
눈, 늘씬한 팔등신. 독자들에게 그윽한 미소를 보내던 그녀는
무궁화 다섯개짜리 호텔처럼 보였다. 그는 섹시함을 무기로
세상과 교섭하고 있었다. 20세기의 키워드, 섹시가 가진 파워를
나는 보았다.
세기의 그믐에 새삼 마릴린 먼로를 떠올린다. 그가 가진 이미지는
바로 저 '호텔'로서의 육체다. 누구나 머물 수 있는. 대중에게
공개된. 반짝거리고 찬란하고 안락하며 돈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장소. 먼로의 섹시함은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만도 세차례 결혼했고, 많은 사람들과 무수한 염문을
뿌렸지만, 그는 스크린을 통해 만인에게 공개된 연인이었고 억눌린
섹스를 해방시키는 열쇠였다. 먼로 이후 섹시는 금기의 울타리를
벗어나, 귀족 계급의 밀실을 뛰쳐나와, 거리에서, 대중들 사이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에 앞서서도 스크린 속 섹시 우상이 있었지만, 영생하는 생명력에서
먼로는 분명 남다르다. 이생을 떠난지 벌써 39년. 그가 살았던
시절보다도 더 긴 세월이 그의 죽음 뒤에 늘어섰건만, 그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섹시 우상으로 우리들 속에 있다. 커피숍 벽에 걸린
사진에서 그는 오늘도 고혹의 웃음을 던지고 있으며, 등신대 플래스틱
인형으로 곳곳에서 치맛자락을 날리고 있다. '37-24-37' 신체 사이즈와
백치미로 압축된 이미지. 이젠 전설이된 그 모습으로 마릴린 먼로는
살아있다.
먼로의 섹시함은 화면 속 그의 시선에 의해 완결되었다. 모두를
쳐다보고 있지만 결국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텅 빈 시선'. 이 비
현실적인 시선은 저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날아 올라가는 치마를
내리누르는 포즈와 겹쳐진다. 19세기적 '정신' 숭배를 몰아낸 20세기
섹시함의 신화는 텅빈 시선과 텅빈 정신을 정당화한다. 먼로 이후, 텅
빈 시선은 섹시 스타의 전형적 시선이 되었다.
먼로의 육체는 강렬한 성적 에너지로 카메라를 매혹했고, 카메라로
인해 영생을 얻었다. 그가 20세기 한 가운데로 출현할 때, 그러니까
10대 후반, 핀업 걸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고아 소녀 노마 진이
마릴린 먼로로 다시 태어날 때, 새 생명을 준 것은 카메라였다. 영화와
매스컴, 전기 작가들에 의해 고착된 이미지, 즉 촛점잃은 눈에 봉긋한
미소, 그것은 카메라가 만들어내고 할리우드를 통해 전 세계 대중을
흡인한 이미지다. 그 말고 누가 이처럼 오래 우리 곁에 섹시 우상으로
머무는가. 그가 가진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 건지 나는 머리를 갸웃거려
본다.
먼로와 카메라의 '결혼'은 섹시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 그래서
더욱 갈증을 일으키는 욕망을 유포시켰다. 먼로는 분명 분기점이었다.
아이같고 천연스런, 먼로의 섹시함은 여성의 섹시함과 성욕을 죄악시하던
이전 세기 윤리관을 녹여버렸다. 지하철 바람에 열오른 몸을 식히는
'7년만의 외출'은 '성욕이 삶의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라는 50년대 미국
사회의 인식을 천진난만하게 형상화한 것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이 지적했듯, 대중은 새로운 신으로서의
스타, 상품으로서의 스타를 동시에 요구한다. 우리는 어두운 극장에서
현대의 신을 만났고 숭배했다. 신의 광휘는 섹시로 더욱 빛났고 섹시는
20세기 사람들의 주제어가 되었다. 극장이라는 신전은 곧이어
텔레비전이라는 좀 더 일상적인 신전으로 확장되었고 여기 광고가
가세하면서 섹시는 20세기 후반의 일살적 삶으로, 우리 현대인의 자아
속으로 스며들었다. 20세기에서 섹스 어필이란 성의 상품화로
귀결지어진다. 이미지를 통해 공공연하게 상품화한 성 산업의 첨병은
역시 할리우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먼로는 카메라와 영화 홍보팀이 만든 이미지일
뿐이다. 크리스타 메르커가 쓴 '섹스와 지성'에 의하면, 먼로는 죽기
얼마전, "나는 일생동안 마릴린 먼로라는 역할만했다"며 울었다. 세번째
남편이었던 극작가 아서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마릴린 먼로라는
바로 그 사실이 그녀를 죽였다". 자연인 먼로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세기의 그믐에서, 스크린을 대체한 텔레비전 모니터는 이제 컴퓨터
모니터의 위협을 받고 있다. 먼로는 이 모든 매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엄연하게 살아있다. 시각 이미지가 소비자 시선을 장악한 이 세기에,
먼로를 통해 대중화된 섹시 이미지는 거의 모든 광고에 내장되어있다. 영화
잡지에 등장한 전도연은 먼로를 패러디한 우마 서먼의 재생이다. 상품
생산과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 먼로는 수시로 '호출'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