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년의 전통을 이어온 영국 상원의 세습 의원들이 11일 역사의 뒤안 길로 물러났다.
종신직인 영국 상원은 왕족을 비롯,세습 귀족,임명 귀족(국가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위 받음),성공회
성직자 등 1295명으로 이뤄져 있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주도해 온 상원 개혁에 따라,세습 의원 759명 중 92명만
남고 모두 의원직을 내놓은 것이다.
이날 회의가 고별식이 된 세습 의원들은 침통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일부는 옛날을 회상하는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남작의 작위를 받아 상원의원이 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장례식을 연상시키듯 검은색 옷을
입고 나와,의석 앞줄에 자리잡았다. 노동당 상원 원내총무 제이 남작은 헌사를 통해 세습 의원들이 수백년간
의회에 기여한 바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이라면서 그러나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며 개혁의 당위를 피력했다.
그러나 상-하원 전원을 위해 이날 밤 왕립미술관에서 열린 샴페인 파티에서도 우울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세습 의원들은 월급은 받지 않지만 회의 참석과 여행에 드는 경비 등을 보조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블레어가
조상이 귀족이라는 이유로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이라는 여론을 조성,이들을 몰아내기에
이르렀다. 여론을 의식한듯 퇴장 의원들의 반발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일부에서는 혁명에서 살아남은
귀족들이 블레어에 의해 기요틴(단두대)에 올랐다 고 말했다.
또 블레어가 보수당 소속이 절대 다수인 세습
의원을 대폭 줄여,노동당의 의회 장악력을 높이려 한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지난해 30여건에 달하는 법안들이
상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한데다,연말까지 사회복지 관련법 등 처리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