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썼던 펄 벅 여사(1892~1973)의 1963년 판 '살아있는
갈대'(동문사, 상하 2권, 각 7000원)가 36년만에 다시 나왔다. 당시
서울대 장왕록 교수가 번역했으나 까다로운 내용 때문에 일반에
알려지지 못했던 것을, 장 교수의 딸이자 영문학자인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부친의 업을 이어받아 개역판으로 완성한 것이다.
장 교수는 개역 완성판을 보지 못하고 지난 94년에 타계했다.
이 책은 펄 벅이 한반도를 무대로,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다. 구한말인 1880년대부터 1945년 해방되던 해까지 한가족
4대의 이야기를 풀어간 대작이다.
상권에서는 실학파인 김일한을 중심으로 한 대원군 축출, 민비
시해사건 등 풍운이 감돌던 구한말이 그려지고 있다. 하권에서는
일한의 장남이자 독립운동가로 활약을 펼치는 연춘의 얘기다. 연춘은
지하활동을 하다 체포되지만 탈옥하여 '살아있는 갈대'라는 전설적
인물이 된다.
이 책이 나올 당시 뉴욕타임스 등은 '대지' 이후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펄 벅은 작품 첫머리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라고 하기도 하고, "역사 깊은 땅은
싱싱하고 푸르고 꽃이 피어 화사"하다고 하는 등 한국과 한민족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그만큼 일제에 대한 분노는
강하게 표출된다.
무엇보다 한국의 문화, 역사, 생활방식 등에 대한 펄 벅의 해박한
지식과 이해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온돌방과 장판의 과학성,
누에치기의 전과정, 단오절에 여러 세시풍속 , 김장담그기 등의 묘사는
펄 벅이 한국을 서방에 소개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펄 벅은 조선 여인들의 지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조선 부인들은 일본 여자처럼 남편 앞에 무릎을 꿇지도 않고, 중국
여자처럼 발을 작게 싸매지도 않으며, 서양 부인들처럼 허리를 단단히
묶지도 않는다. 조선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지위가 동등하고, 아들이
컸다고 해서 어머니를 얕보지도 않는다. 왕실에서는 왕이 죽고
그 후계자가 너무 어리면, 어린 왕이 다 클 때까지 대비가 섭정을
한다.'(상권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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