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고교를 졸업하도록 총각 딱지를 떼지 못했다면 '팔불출'에
속한다. 그런 사내아이 넷이 졸업파티 때까지는 기필코 딱지를 떼자는
약조를 한다.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2일 개봉)의 플롯은
청춘영화 치고도 꽤 낡아 보인다. 하지만 어법은 질겁하도록 직설적이다.
제목과 관련한 엉뚱한 자위행위부터, 온 마을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침대위 해프닝까지, 주체못할 10대 성욕이 넘쳐난다.

그래도 '아메리칸 파이'는 지저분하지 않다. 이 포복절도할 탈총각기는
저급 ;화장실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구김살 없이 건강한 성장영화로 선다.
일단 누구나 거쳐온 10대 시절 우화를 다루는 덕분이다. 거기서 추려낸
소재들은 친근하고 디테일은 억지스럽지 않다. 천박한 코미디들이 흔히
사이코를 등장시키는 것과 달리, 악의 없이 인간적인 인물들이 공감대를
넓힌다.

애니메이션 '개미' 각본을 쓴 웨이츠 형제는 이 연출 데뷔작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는 재주를 부리면서 성욕을 훌륭한 성장 코드로
활용했다. 배역도 잘 골랐다. 참신한 얼굴들이 저마다 풍기는 이미지가
각자 극중 캐릭터에 잘 맞아 떨어진다. '아메리칸 파이'는 솔직하되
천하지 않다. 저질을 자처하는 근래 섹스 코미디들에 질린 중년 관객이라도
실컷 웃을 수 있다.

(*오태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