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앞에서 수시로 연기해야 되는 것이 형사라는 직업이에요.』
인천 연수경찰서 강력반 박재인(36) 형사는 요즘 인기리에 상영중인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명세)의 주인공 우 형사(박중훈
분)의 실제 모델이다.
96년 가을 인천 서부경찰서에서 박 형사를 알게 된 이명세 감독은
그에 대해 「허허실실의 대가이자 기선 제압의 명수」라는 인물평을 내
렸다고 한다. 실제로 만나본 박 형사도 그랬다. 어눌한 말투에 가끔씩
더듬는 듯한 손놀림. 오죽하면 서부서 시절 별명이 「영구」였을까. 하
지만 「조직 폭력배」 얘기만 꺼내면 표정이 달라졌다.
여주에서 농고를 졸업하고 시작한 경찰 생활이 올해로 11년째. 줄곧
강력반으로만 돌았다. 인천 폭력 조직의 계보를 훤하게 꿰고 있고, 감
옥에 보낸 「조폭」만 수백명에 이른다.
『이명세 감독요? 지독하고 집념이 대단했어요.』
96년 당시 이명세 감독은 형사들의 삶에 밀착하기 위해 박 형사가
있던 서부서 강력계에서 한동안 살았다. 박 형사는 『출동할 때 뒷자리
가 꽉 끼는 것 빼고는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요즘도 가끔 이 감독의 호출기 번호를 누른다. 이 감독이 인사
말 대신 녹음해 놓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듣기 위해서다. 바로
「인정사정 」의 주제가. 『비오는 날 남의 집 처마밑에서 잠복할 때
가끔 들어요.』
박 형사는 영화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태어나서 딱 두 번 극장
에 가봤다고 했다. 그나마 영화 제목도 잊어버렸다. 「인정사정 」도
아직 못봤다. 『뭐하러 극장까지 가서 봐요. 비디오로 나오면 한 번 보
죠』하는 식이다.
하지만 「인정사정 」의 흥행이 호조라는 소식에 대해서는 박 형사
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얘기 도중 박 형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온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전해준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