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에 생긴 일'(34년)에서 `졸업'(67년)을 거쳐 `필링
미네소타'(96년)까지, 숱한 신부들이 결혼식장을 뛰쳐나왔다. 그
러더니 아예 상습적으로 식장에서 도망치는 여자 이야기가 나왔다.

런어웨이 브라이드(Runaway Bride·14일 개봉)에서 여주인공
은 도합 네차례나 결혼식을 망가뜨린다.

메릴랜드 시골 마을. 활달한 철물점 딸 매기(줄리아 로버츠)가
결혼식장을 들어서다 그대로 줄행랑을 놓은 게 벌써 세차례. 네번
째로 고교 체육교사와 결혼을 앞뒀다. USA투데이 칼럼니스트 아이
크(리처드 기어)가 매기를 소재로 삼아 여자들을 비아냥거리는 칼
럼을 쓴다. 매기는 신문사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짱을 놓고, 아이크
는 해고된다. 아이크는 네번째 결혼식도 결딴나는 현장을 취재해
앙갚음 하려고 매기를 찾아간다.

`런어웨이…'는 90년 히트작 `귀여운 여인'의 게리 마샬 감독,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 3총사가 다시 만나 꾸민 로맨틱 코
미디다. `달아나는 신부'라는 흥미로운 모티브를 앞세웠지만, 적
대적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는 사이 사랑을 쌓아간다는 공식은
충실하게 따른다.

영화 전반, 게리 마샬은 예의 솜씨를 발휘한다. 빠른 템포, 톡
톡 튀는 대사,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즐겁다. 시골 마을 풍경과
사람들도 정겹고 아기자기하게 스케치했다. 단역들에게까지 일일
이 캐릭터를 부여해 생동감을 더한다. 80년대 히트 팝송 중에서
가사가 영화 줄거리에 들어맞는 U2, 홀 앤 오츠 노래를 센스있게
골라 넣었다.

단점도 많다. 모티브에 비해 시나리오는 허술하고 종종 억지스
럽다. 남녀가 어떻게 애정을 품게되는지, 남자주인공이 혐녀증을
어떻게 벗어나는지 묘사가 부실하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 여주인
공이 왜 결혼을 두려워하는지도 어물쩡 넘어가려 한다. 그녀는 마
지막에 `자아 발견'이라고 밝히지만, 그런 추상적 이유로는 관객
을 감탄시키기는 커녕, 설복할 수 없다. 네번째 도주 역시 지나치
게 작위적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어느때보다 코믹한 연기를 한다. 덜렁대는 특
유 매력이 여전하고, 싱긋 웃는 얼굴이 일품이다. 리처드 기어는
이제 로맨틱 코미디를 하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다. 영화속 캐릭터
마저 평면적이어서 그는 내내 시들해 보인다. 존 쿠잭의 누나 조
운 쿠잭은 여주인공 친구를 발군으로 연기했다. 푼수기 있는 역을
그보다 더 잘할 배우는 없을 것 같다.

`런어웨이…'는 `노팅 힐'이 얼마전 세운 로맨틱 코미디부문
미국 개봉 첫 주말 입장수입 최고기록을 압도적으로 갱신했다. 미
국사람들은 영국적 우아함보다 할리우드식 가벼움을 더 좋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