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상가 질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는 '가로지르
기'의 철학자다.

들뢰즈는 서양 철학사의 전통과 계보를 가로질렀다. 들뢰즈 철학은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의 기존 개념들을 뒤집고 새로운 사상의 지평을
횡으로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말년에 호흡기 질환을 앓았던 그가 지난
95년 파리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도 운명에 대한
가로지르기가 아니었을까? '포스트 모던의 조건'이란 책으로 유명한
사상가 장-프랑스와 리오타르는 '르 몽드'지에 다음과 같은 추도사를
썼다. "들뢰즈는 세기말 사상의 전장에서 탁월한 저격수다. 그는 탈주
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그의 탈주는 전진 혹은 후진이 아니라 가로
지르기다."

파리에서 태어난 들뢰즈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
는 파리 8대학 철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펼쳤다. 들
뢰즈의 가로지르기는 '이데아'를 유일한 본질로 간주하면서 실재하는
사물과 사건들을 홀대한 플라톤 철학의 편협함을 비판했다. 그는 또
서양 이성의 정수인 헤겔의 변증법을 이어받지 않고 그 옆구리를 찔
렀다. 그가 보기에 정 반 합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은 부정해야 할 대상
을 설정하고 다시 그것을 부정하고 또다시 부정해야 하는, 순환하는
한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 들뢰즈는 "변증법이란 새로운 생각
이나 느낌의 방식을 창조하지 못한다"고 단언하면서 변증법적 사유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20세기 서양 지성의 양대 기둥으로 꼽히는 마르크스와 프로이
트도 뒤흔들었다. 그는 원시공동체,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
산주의 사회로 진행한다는 마르크스의 역사단계론을 따르지 않았다.그
는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쓴 저서 '반 오이디푸스'를 통
해 인류 역사를 미개 시대, 군주제 시대, 자본주의 시대로 나눴다. 여
기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시대란 모든 욕망의 분출기라는 점이다.들
뢰즈는 욕망을 한없이 조장하는 자본주의를 가리켜 '탈코드'의 시대라
고 불렀다. 자본의 힘이 끊임없이 기존 체계와 가치를 파괴하면서 새
로운 욕망을 창출하는 구조가 바로 탈코드의 현상이라는 것.

들뢰즈의 욕망이론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도 다르다. 프로이트
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동원해 억압된 욕망의 양상을 가족 내부 차
원에서 분석했다면, 들뢰즈는 욕망의 창조력을 강조했고, 그 욕망을
사회적 차원에서 조명했다. 들뢰즈는 욕망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에너
지로 봤는데, 문제는 자본주의가 적당하게 결핍을 만들고 욕망을 조종
하면서 그 구성원들을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 철학사의 전통을 가로지른 들뢰즈였지만, 그에게도 스승이 있었
다. 특히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통해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인간 중심주
의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했고, 니체를 통해 변증법을 넘어서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 '니체와 철학'이란 저서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