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의 명연기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양들의 침묵'의 원작자 토머스 해리스가 11년만에 속편격인
신작 '한니발 1,2'(이창식 옮김·창해간)을 내놓았다. 해리스는 '양
들의 침묵'에서 최고의 지성과 최악의 악마성이 공존하는 한니발 렉
터 박사와 출중한 여성 FBI요원 스탈링의 심리적 대결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전개했었다. '한니발' 역시 전편과 마찬가지로 괴기
함과 공포, 잔혹함이 넘쳐난다.
이야기는 '양들의 침묵' 이후 7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엽기
적 살인사건을 처리해 단숨에 스타가 된 스탈링은 마약제조조직을 덮
친 현장에서 아기를 안은 여두목을 사살하지만 냉혈 살인기계라는 여
론의 비판에 직면한다. 스탈링이 위기에 몰려 있을 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렉터 박사가 보내온 것. 렉터는 7년전 수감됐던 정신병원
에서 사람들을 살해하고 탈출한 후 잠적한 상태. 렉터는 자신의 신분
을 숨기고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도서관장으로 은신하고 있다. 렉터가 편지를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지
자 한 인물이 등장한다. 렉터 박사에게 치명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도축업 재벌 메이슨이다. 보조장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는
그는 렉터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왔다. 메이슨은 스탈링을 미끼로
렉터를 추적한다. 메이슨의 목적은 자신의 눈 앞에서 렉터를 굶주린
돼지들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것. 정부 관리까지 매수한 메이슨은 렉
터를 유인하기 위해 스탈링을 위기에 빠뜨리고, 마침내 렉터를 생포
한다. 소설은 사적 보복을 위해 렉터를 쫓는 메이슨과 렉터를
법정에 세우려는 스탈링의 행적을 따라간다. 소설은 미국과 유럽 각
지로 무대를 옮겨가며, 단테의 시구절과 오페라의 아름다운 아리아를
굶주린 돼지들의 괴성과 뒤섞어 놓는다. 대가들의 명화와 인간의 내
장을 갈라버리는 참혹한 장면이 교차하고 최고급 포도주와 송로버섯
등 최고급 문화의 상징과 돼지우리와 집시들의 악취를 나란히 제시하
고 치열한 누뇌싸움을 현란하게 펼친다. 또 완벽한 체력과 직관, 판
단력을 갖춘 수사관으로서 스탈링의 모습과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
에 대한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나약한 스탈링의 이중적 성격도 대비된
다. 렉터도 마찬가지. 그 역시 어린 시절 사랑하던 여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한 노이로제에 시달린다. 치열하게 대결해야 할 추적자와 도
망자의 이같은 이중적 캐릭터는 이 소설 마지막 부분의 반전에 대한
암시를 제공한다. '한니발'의 소재는 더욱 강하고 특이한 자극을 원
하는 미국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여름철 무더위를
잠시 잊게하는 마취효과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