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국민회의-청와대 대변인을 8년 가까이 맡으며 'DJ의 입' 역
할을 해온 핵심 참모. 조직 내외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성실성과 뛰어
난 순발력을 바탕으로 DJ의 의중을 언론에 정확히 전달하고, 탁월한
정치감각으로 1급 정치참모 역할도 했다. 83년 미국 이민생활중 DJ와
인연을 맺은 지 16년만에 장관직에 올랐다. 부인 이선자(56)씨 사이에
2녀.

◆ 출처 : 조선일보 인물DB ◆

문화관광 박지원

  
성 명 : 박지원(男)
한 자 명 : 朴智元
영 문 명 : PARK JIE WON
생년월일 : 1942.06.05
본 관 : 밀양
출 생 지 : 전남 진도
본 적 : 전남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 289
종 교 : 천주교
주요직업 : 국회의원 장관
현 직 : 문화관광부 장관


직장주소 : (110-760)서울 종로구 세종로1가 82-1
직장전화 : (02)3704-9114
신장체중 : 167cm/75kg
취 미 : 독서

학력사항 :
기 간 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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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1960 문태고 졸업
-1969 단국대 경영학과 졸업

경력사항 :
기 간 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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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 럭키금성상사 근무
1972.11- 동서양행 뉴욕지사장
1975 - 데일리펫숀 대표이사
1980 - 뉴욕한인회 회장
1980 -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 회장
1987 - 평민당 진도군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
1989 -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
1991 - 신민당 민주당 통일국제위원회 부위원장
1992 - 14대 국회의원(민주, 전국)
1992 -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1992 -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위원
1992 - 민주당 대변인
1993 - 민주당 당무위원
1995 - 민주당 경기부천소사지구지구당위원장
1996 -1997.5 국민회의 기획조정실장
1995 - 국민회의 대변인
1997.5 - 국민회의 총재실담당 특보
1997.10- 국민회의 총재 언론특보
1997.12-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1998.1 - 김대중대통령당선자 대변인
1998.2 -1999.5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1999.5 -현 문화관광부 장관

상 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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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 동백장/1983.6

가족사항 :
관계 성 명 생년월일 직 업 근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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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이선자(李善子) 1943.03
장녀 박혜연 1982.02
차녀 박혜준 1984.02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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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박지원 : 재치-순발력-유머…"타고난 입" 
1998.1.22  주간조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박지원 대변인은 92년 민주당 전국구로 국회
의원이 되기얼마전 미국의 한 점술가에게 점을 봤다. "당신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될것이다.의원이 되면 초선의원답지 않게 '요란법썩' 하게 
활동하게 될 것이다.
정말 세상을 시끄럽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의원에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시 잘되고 의원으로서의 생명력도
 길어질 것이다."
박 대변인의 정치 입문에서부터 당선자 대변인으로 임명되기까지의 역정
을 보면 점술가의 말은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점술가의 말대로 그는 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됐다. 그리고 92년 1
2 월 대선직후 민주당 대변인에 발탁됐다. 당시 김대중 총재가 대선에
 패배해 정계 은퇴를선언, 민주당은 이기택 대표가 관리하고 있었다.동
교동계로서 이기택 대표에게 파견된 것이었다. 당내에서는 이를 두고 동
교동계가 박대변인을 이대표에게 '시집'보냈다는 말로 표현했다.
전남 진도 출신으로 재미 사업가이던 박 대변인은 84년 미국 망명중
이던 김대중당선자를 처음 만난 이후 줄곧 그의 측근으로 불려왔었다. 
초선 의원으로서 제1야당 대변인이 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때부
터 박 대변인은 정당의 '입'으로서 보기 드물게 맹활약을 했다. 타고
난 재치와 순발력, 유머스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논평으로 유명했다.
대변인으로서의 그의 자질은 민주당 대변인이 되기 전 수석부대변인으로
 92년 대선을 치를 때부터 나타났다. "머리 등 모든 것을 빌리 기
만 하는 김영삼 후보는 재산을 공개한 것처럼 머리도 공개하라" "원자
로와 중거리핵이 어떻게 다른지김영삼 후보는 설명해보라"….
박 대변인은 그 후에도 YS공격의 악역이자 선봉장을 맡았다. 당연히
 초선 의원임에도 요란법썩할 수밖에 없었다. 여당에서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로 부각됐다. "점술가가 말한 '요란법썩'이란 대목은 바로 
내가 대변인이 될 것임을 두고 한 말 같았다." 박 대변인의 회고이다
. 그는 대변인으로서의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민주당과 국민회의
 대변인을 96년 7월까지 3년7개월을 했다.최장수 야당 대변인의 기
록이었다. 그동안 맞상대인 집권당 대변인은 민자당 박희태 강재섭 하순
봉 박범진 대변인, 신한국당 손학규 대변인까지 5대가 이어졌다.
박 대변인은 민주당 대변인을 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숱한 
'명언'들을쏟아냈다. 성수대교 붕괴에 정부측이 '관리 책임이 아닌 시
공의 잘못'이라고 주장하자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책임이냐"고 일
갈했다. 민자당 김종필 대표가민자당을 탈당하는 등 여권에 난기류가 일
때마다 '팽정권'이라고 비꼬았다. 잇단부실 사고에는 "경제 사회 정치
 분야에서 0점을 받은 03정권"이라고 비아냥댔다.
그의 독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회창씨를 두고는 "대쪽이 아니라 
죽순", 박찬종씨는 "틈만 있으면 새어나오는 연탄가스", 김덕룡 의원
은 "백두흑심" 등으로 공격했다.
민주당 분당 후 민주당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공격하자 "여당의 
2중대"론으로 민주당의 야당성을 흔들었다. 박 대변인은 95년 7월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이사장이 민주당을 분당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는
 본격적인 'DJ 입' 역할을했다. 그때까지는 김대중 이사장과 민주당
 이기택 총재 사이를 연결하는 파이프 라인이었다.양측이 긴장 관계일때
는 '친정(김대중)과 시댁(이기택)' 사이에서 곤욕스런 일도 많았지만
 늘 친정쪽에 마음을 두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국민회의 창당 뒤
에도 이기택 민주당 총재를 직접 공격 하는 일은 삼갔다. "그래도한때
 시아버지였는데…"라곤 했다.
그는 96년 4·26 총선 당시 부천에서 신한국당 김문수 의원에게 
패했다. 점술가의 말이 또 한번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박 대변인은 "
집권당을 너무 비판하다 '괘씸죄'에 걸려 낙선 표적의 대상이 된 것 
같다"며 "이제 대변인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기획조정실장,총재특보를 거치면서도 늘 그는 'DJ의 최측근'이었다.
 당내 갈등이나 혼선이 일 때는 '총재의 뜻'이라며 지침을 전달하는 
악역을 담당했다.이때문에 일부 당직자들로부터 '건방지다''권세 등 등
하다'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지난해 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되자 그는 '어김없이' 인수위 
대변인으로 발표됐다. 이에 박 대변인은 김대중 당선자를 찾아가 "제발
 봐주십시오" 하고 대변인직을 고사했고, 당선자 공보팀장으로 있던 김
한길의원에게 인수위 대변인직이넘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그는 지난 1월6일 다시 당선자 대변인에 임명됐
다.'DJ의입'으로 컴백한 것이다.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 김한길 
인수위 대변인과 함께3대변인 체제이지만 김당선자 주변에서는 박 대변인
을 '유권해석' 대변인이라고 부른다. 인수위, 비상경제대책위 등이 혼
선을 빚을 때마다 박 대변인이 김 당선자의 의중을 반영해 교통 정리를
 하기때문이다.
경제 청문회 시기와 방식으로 혼란스러울 때 박 대변인이 나서 "지금
은 경제 청문회를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때이다
"고 한 것 등이 예이다. 김 당선자가 박대변인을 임명한 것은 바로 
이런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고려라는 얘기들이 많다.
박 대변인은 차기 청와대 공보수석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는 부지런하
기로도 유명하다.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을 만나 여론과 아이디어를 수
집, 김당선자에게 보고한다. 1월12일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김 당선자
의 만찬,13일 5대 재벌 회장과 김 당선자의 회동 등은 모두 박 대
변인이 구해온 아이디어였다.
박 대변인은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이런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김당선자가바깥 세상 돌아가는 기류를 정확히 파악하고 국정 운영에 필
요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받도록 하는 역할이다.
박 대변인은 청와대에 들어가면 일상적인 일은 부대변인에게 맡기고 자
신은 밤낮으로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외신 기자들도 두루 접촉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김당선자는 '비서 정
치' '측근정치'를 배제하고 민심을 직접 살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
하고 있다. 박 대변인은 그런 창구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낭기 기자>


◆ 출처 : 조선일보 인물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