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초 섹스숍 냈던 '선각자'…붉은광장에 분점 개설 꿈 ##.

♧ 독일은 박물관의 나라이다. 어느 도시 어느 작은 마을을 가더
라도 역사 미술 문학 과학 자연 산업 등을 주제로 한 박물관들을 만
날 수있다. 옛것이라면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모아 두었다가 박
물관이란 간판을 버젓이단다. 두말할 것 없이 관람료는 철저히 챙긴
다.

베를린의 중앙역인 쪼 반호프(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동물원 역',
베를린 동물원이 바로 옆에 있다)와 19세기 말에 문을 열었다는 카
페 크란츨러 사이를 걷다 보면 칸트가가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독
일 관념철학의 거봉 임마뉴엘 칸트의 이름을 따 붙인 거리이다. 그
런데 이 칸트 가의 중간 네거리에 거리 이름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
상스런 박물관이 하나 들어서있다.이름하여 '에로틱 무제움'(Erotik
Museum). 쉽게 말하자면 섹스 박물관이다.

뭐를 주어 모아 놨길래 이런 간판을 달았을까. 이 별난 3층짜리
건물내를 들어가 보면 우리 같은 한국사람들은 낯이 금새 뜨거워 진
다. 회화 만화 조각 석판화 소품 등 전시품목이라는 게 모두 섹스물
이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인간의 성기 아니면 성희를 노골적으로 묘
사해 놓은 것들이다. 이것도 모자랐는지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마네킹도 중간 중간에 서 있고 한쪽에선 포르노 영화도 상연하고 있
다. 한 마디로 인도의 대표적 성전인 카마수트라나 중국의 소녀경에
서 등장하는 장면들이 춘화나 미니어처 혹은 영상으로 재현돼 있다
고 보면 된다. 루돌프 발렌티노 같은 1920년대의 대표적인 포르노영
화감독들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1층을 가보면 포르노 비디오나
잡지, 섹스관련 소도구, 약품 등이 고객들의 눈길을 당긴다.

물론 이 곳에 전시돼 있는 물건들은 방문객이 살 수 있다. 또 물
론 이 에로틱 무제움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베를린 한복
판의 명소이다.

그런데 이런 웃기지도 않는 희한한 박물관의 주인이 고희를 훤씬
넘긴 올 79세의 할머니라면 잘 맏기지 않으리라. 손자도 자그만치 9
명. 베아테 우제(Beate Uhse). 사실 이 할머니는 이름만 척 대도 모
르는 사람이 없는 독일의 명사이다. 일개 박물관의 임자로 그치는게
아니라 '섹스왕국의 황태후'로 불리는 재벌이기 때문이다. 단지 보
통 재벌과는 유가 다른 성을 파는 포르노 산업의 귀재일뿐. TV 토크
쇼에도 곧잘 등장한다.

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베아테 우제 주식회사는 잡지 비디오 영화
등을 팔아 작년 한해 동안만 1억6800만마르크(한화 1120억원상당)의
순수익을 올렸다.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
다.

빈털터리 과부에서 섹스재벌로 올라서기까지 베아테 우제의 이야
기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동프로이센의 봐르게나우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의 어린 시절 꿈은 파일러트. 1927년 아우구스투스 린트베르
크가 세계 최초로 대서양횡단에 성공한 것을 보고서였다. 그녀는 희
망대로 베를린 랑스도르프 비행학교에서 입교 6개월만에 조종사 자
격을 따낸다. 그 후 직업조종사로 일하며 스턴트 우먼으로도 활약하
던 그녀는 공군장교와 결혼했으나 2차대전에서 남편을 잃었다. 아들
하나를 둔 24세의 청상과부 베아테 우제가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게
자전거 한 대를 끌고 벌인 이동판매. 그녀는 전후 독일 여성들이 성
에 무지해 낙태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착안, 피임약을 주력 품목
으로 삼았다. 자신이 직접 쓴 피임 지침서 'Schrift X'도 끼워 팔았
다. 걸음은 작았지만 이 것이 그녀가 건설한 '섹스왕국'의 시작이었
다. 이후 사업자 등록도 정식으로 마치면서 그녀는 피임약 등 피임
기구와 잡지를 전국망을 통해 통신판매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섹스 숍도 개설, 사업영역을 넓혀갔다. 현재 베아테 우제가 운영하
는 섹스숍은 독일을 비롯 중부 유럽권에 50개가 넘는다. 지난 78년
부터는 비디오와 영화 등 영상물 제작에도손을 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재빨리 동독 지역으로도 손을 뻗쳐 지금까지 200만의 통신
판매 회원을 확보했다. 이처럼 눈부신 사세확장을 이룬 데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도 섹스관련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통신판매 기
법을 동원한 것이 적중한 때문이었다.

사업가로서의 성공 외에도 그녀는 기행으로 독일 매스컴의 스포
트 라이트를 받았다. 50대에 25살이나 어린 흑인과 한때 동거를 하
기도 했는데 주변의 지탄이 따르자 "축구 중계나 보며 맥주 마시는,
환갑넘긴 남편보다는 싱싱한 20대가 더 낳지 않느냐"며 일소에 부치
기도 했다. 사업가로서 그녀의 남은 꿈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섹
스 숍을 내는 일.

"불륜과 경제의 발전은 비례하는 법이다."라는 실락원의 작가 와
타나베 준이치의 말처럼 섹스산업의 발전도 경제의 볼륨과 함수관계
에 있지 않는가를 베아테 우제에게서 엿볼 수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