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탄 가족의 해괴한 '축제'…영화적 트릭-인공적 손길 거부 ##.
♧ 이것은 두 가지 이유로 끝까지 참아내기 힘든 영화다. 우선 그
화질과 카메라 흔들림. 인공 조명을 철저히 배제한 채 비디오 카메라
로 찍은 다음 필름에 옮기는 바람에 대부분 장면들이 거친 입자로 뭉
개져 버렸다. 예를 들어 밤의 야외 장면 같은 대목은 광량 부족으로
거의 인물을 식별하기 힘들 지경이다. 게다가 비디오 특유의 기동성
을 자랑하느라고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휘둘러대는 통에 삼각대
에 고정시켜 찍은 쇼트는 단 하나도 없다! 관객은 현기증 정도가 아
니라 끝내는 두통을 얻고야 만다.
달콤한 음악도 없고 화려한 세트도 없다. 모두가 '도그마 95'라는
해괴한 원칙에 입각해 제작된 탓이다. 그 어떤 영화적 트릭도 인공적
인 손길도 거부하는 영화를 만들자고 작당한 네 명의 덴마크 감독 중
하나인 토마스 빈터베르크는 정말 철저하게 일을 해낸 셈이다. 그리
고 이런 조악한 가공 이전의 상태로 담아낼 내용이 어떤 것일지 짐작
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극 인내력을 시험하는 두 번째 시련은 물론 내용과 전개방식에
서 온다.
시골 호텔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주인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두
아들과 한딸, 그 밖의 친지들이 몰려온다. 관객도 4대를 망라한 대가
족이 모여 벌이는 이 행복한 `셀레브레이션'에 초대된 기분이다. 아
름다운 풍경, 찬란한 여름 햇살, 쾌적한 시설과 산해진미, 오랜만의
가족상봉, 즐거운 악수와 포옹, 반가운 인사와 유쾌한 농담들, 다 좋
다. 장남이 아버지께 보내는 축사에 묻어두었던 폭탄이 터지기 전까
지는. 영화 시작 37분만에 하객들은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아버진
우릴 강간했죠.".
나머지 한시간 동안 우리는 이 더러운 얘기를 지겹도록 들어야 한
다. 장남은 참으로 집요하게, 아들 딸을 어려서부터 강간하고 끝내
딸을 자살에 이르게 만든 아버지, 그 모든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해온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한다.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그때마다 좀
더 자세하게.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안 믿는 척하기
때문이다.
여기 모인 부르주아들은 이미 끝장나버린 잔치를 어떻게든 무사히
마무리해보려 무진 애를 쓴다. 평화를 깨는 진실은 아예 못 들은 척
한다. 한마디로 이것은 `모르는 척', `못 들은 척'의 영화다. 아버지
에게 복수하고자 시작된 아들의 노력은 하객들의 귀를 뚫으려는 처절
한 몸부림으로 전환된다. 그들은 진실과 직면하기를 기를 쓰고 회피
한다. 절규하는 아들의 비극은, 마치 장남이 실내에 없다는 듯이 행
동하는 나머지 사람들의 코미디로 인해 몇십배 증폭된다. 마침내 그
토록 인자하고 자상해 보이는 아버지가 "너희 연놈들한테 쓸모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고 실토할 때까지 이 잔인한 축제는 계속된다.
장남의 폭탄 선언은, 마치 또 다른 복수극 `햄릿'에서 왕자가 연
극을 상연하면서 숙부와 어머니의 반응을 살폈던 것처럼, 사람들의
반응을 시험하는 계기가 된다. 영국에서 태어난 덴마크 왕자는 이렇
게 조국으로 귀환한것이다. 또 음울한 스칸디나비아 정서와 가족관계
의 파탄을 묘사하는 실내극의 전통으로 보자면 입센과 초기 스트린드
베리에 직접 닿아있다.
`자연주의자는 신을 없앰으로써 죄의식을 없앴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스트린드베리였고, 과연 이 영화의 아버지에게는 어떠한 죄의식
도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단지 죄악의 결과와 인물의 반응을 관찰할
뿐이다. 한편 이것은 `대부'이기도 한데, 가부장 파시스트 아버지를
둘러싼 가족의 드라마로 사회 전체를 요약해보고자 하는 야심이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화니와 알렉산더'의 세계로 쳐들어간 부뉘엘이라고
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셀레브레이션'은 화질로 보나 뭘로 보나, 가
정용 캠코더로 촬영한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홈 비디오'라는 편이
더 맞겠다. 큰딸의 유서에 적힌 "저승엔 빛과 아름다움이 있겠지"라
는 표현을 그대로 빈터베르크에게 돌려주고 싶을 뿐이다. 이 영화엔
좀더 많은 촬영용 라이트와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필요하다.
(박찬욱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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