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악마가 내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
작가정신. 7000원.
뭘 하나 먹어도 그렇게 요란하게 의미부여하며 먹는 게 일본 문화의
한 특성이긴 하다. 그렇다 해도 참 대단한 입심이다. 책의 활자 하나
하나가 싱싱한 요리 재료들이다. 그것들은 마치 방금 바다에서 잡아올
려 숯불에 그을린 천연 장어나, 숲 속에서 활로 잡아 꺼낸 순록의 간처
럼 읽는 이의 혀끝을 자극한다.
"장어 기름 한방울이 입가에 맺혀 떨어지는 찰라, 그녀는 침과 기름
으로 번쩍이는 혀로 그것을 날름 핥아버렸다. 블랙빈 소스를 바른 게,
오리 뒷다리와 함께 삶은 주먹만한 전복, 꼬챙이에 꿰어 뜨거운 철판위
에서 기름을 튀기고 있는 장어. 갑각류와 어류와 패류의 부드러운 살이
그녀의 이빨에서 으깨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나의 귀를 애무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 에세이집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
왔다'(작가정신간)는 단순한 요리 기행집이랄 수 없다. 책 한권이 동서
양 진귀요리의 향연이자 언어의 성찬이다. 어려서부터 마약과 그룹섹스
를 경험했고 영화감독 사진작가 스포츠해설가를 겸한 무라카미 류는 요
리기행을 문명론과 인간의 얘기로 발전시킨다. 세계 미식가협회 임원이
라는 이 불순한 작가에게 음식은 여자와 하나다.
'코트다쥐르의 밤은 요염하다-누벨 퀴진, 매춘굴에서 만난 초능력의
치과의사-자라요리, 열한번 성형수술한 여자-로스트 프라임리브스, 트
럭 운전사는 삼계탕을 먹었을까-삼계탕, 새카만 똥을 볼 때마다 울음을
참는 남자-오징어 먹물 스파게티, 차가운 게살은 침묵을 강요한다-스톤
크랩 요리….'.
다뤄진 요리 주제는 32가지. 세계 각국의 가장 맛있고 호사한 요리
가 무라카미 류의 실제 여행-체험과 어우러져 구체성을 더한다. 대부분
의 이야기에서 뺄 수 없는 것이 작가 주변에 있던 여성들과의 섹스에
대한 기억이다.
"그녀의 권유로 지느러미 주변에 붙은 살을 먹어보았는데, 그건 마
치 바다에 떨어지는 눈처럼 혀 위에서 녹아, 목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내리더니 불현듯 사라졌다."(그녀가 처녀
였던 이유-상어지느러미 스프).
"파리에 있는 투르 다르장의 유명한 오리 요리는 피를 뽑지 않고 질
식사 시킨 오리를 사용한다. 그래야 철분을 함유한 오리 특유의 풍미가
생겨난다. 피와 골수 소스 위에 놓인 오리 요리가 나왔다. 오리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거냈다가 잊어버린 자신의 내장
일부를 몸 안으로 다시 집어넣는 듯한 느낌이었다."(쇼핑 중독증에 걸
린 남자-오리 요리).
"구운 생선 이리(물고기의 수컷 뱃속에 있는 흰 정액 덩어리)가 나
왔다.'이거야!'하고 남자는 이리를 입속에 밀어넣었다. 나도 먹었다.늘
그렇듯이, 절대로 허락될 수 없는 것을 입에 넣는 기분이다. 죄 그 자
체를 먹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죄를 먹고 우리는 원기를 되찾는다."
(작은 돌기 공포증을 가진 남자-생선 이리).
'달콤한 악마…'의 기조는 어떤 사회적 규제나 도덕으로부터도 해방
돼 욕망 그 자체를 끝까지 추구한다는 것이다. 엔화의 가치가 이 작가
에게 세계의 호사스런 음식 편력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반성할 줄 모른다.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지금 일본은 거품경제가 파멸상태에 빠져들었고 온 국민이 참회하
는 분위기다.… 돈은, 써버리면, 거품 따위 일어날 수가 없다. 더 벌자,
더 저축하자, 라는 서글픈 농경민적 가치관이 거품경제를 부른다. 수렵
민은 낭비밖에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