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테스, 밤무대 댄서, 창녀…. 욕쟁이에 잡초같은 인생까지, 정
선경(28)이 그동안 연기해낸 인물들은 대개 거칠다. 그러다보니 작품
속 배역과 실제 인물을 혼동해 그를 '쉬운 여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94년 영화 데뷔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얻은 '엉덩이
가 예쁜 여자'란 별명은 이런 '편견'을 더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야
릇한 농담이나 시선을 던지는 바람에 당혹스러웠어요. 속 상해서 많
이 울기도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무덤덤해지더라구요.".

12일 첫 방송한 SBS 일일극 '약속'(허숙 작·이영희 연출, 월∼금
오후8시55분)에서 그녀는 또 한번 '터프 걸'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
다. 사고 현장을 누비며 생명을 구하는 여성 119 구급대원 오지영이
그녀배역이다. "남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려고 손톱도 깎고, 머리도 일
부러더 짧게 잘랐어요. 촬영 때도 구조장비와 들것을 나르느라 힘쓸
일이 많네요.".

'약속'은 한 집에서 사는 배다른 자매의 사랑과 좌절 등 엇갈린
행로를 담는다. MBC 미니시리즈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가수 지망생
으로 주목받은 박선영이 동생 민영역을 맡았다. 50분짜리로 특별 편
성된 12일 첫회는 자매 갈등을 첫 고리로 걸었다. 민영은 "더러운 피
를 지니고 태어났으면서 고귀한 척 하지말라"고 언니를 몰아세웠다.
속도감을 살려 일일극보다는 미니시리즈같은 느낌을 줬다. 정선경은
'팥쥐' 역으로 미움받던 MBC '사랑과 성공'과는 달리 배다른 여동생
을 다독거리는 따뜻한 인물이다.

한양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정선경은 94년, 스스로의 표현대로라면
'남들 시집갈 나이에' 연기에 입문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이
어 95년 SBS 사극 '장희빈' 히로인에 발탁되며 초고속으로 자리를 굳
혔다.

"연기를 하면서 제게 이런 면이 있나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호
스테스로 나온 '개같은 날의 오후'를 찍을 때 욕설이 익숙치 않아 애
를 먹었어요. 그런데 촬영을 끝낸 뒤 운전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욕
설이 튀어나오더라구요."지금까지 맡은 배역중 진짜 성격과 닮은 인
물은 KBS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 봉미라고 말한다. 좋다는 감정 표
현을 하지 못할만큼 내성적인 성격이 그렇다고 했다. 그녀는 "짐 싸
들고 훌쩍 여행 떠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랑과 성공'을
끝낸 지난달에도 샌프란시스코 친척집에 보름쯤 머물다왔다.

그녀는 영화에 대해서도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왜 저를 멜로 배
우로는 봐주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 바람에 욕심나는 작품을 많이
놓쳤어요." 가볍게 푸념을 털어놓던 정선경은 이상형을 이렇게 말했
다. "머리 굴리는 복잡한 사람보다 솔직 담백한 타입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