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노튼은 지금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젊은 배우중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지녔다. '프라이멀 피어'에서 그는 천사와 악마를 오가
며 캐릭터의 복합성을 소름 돋게 표현했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는 순수의 상징 같은 청년이었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X'(American History X·17일 개봉)에서 노튼은
카리스마를 한껏 뿜어낸다. 그는 증오의 파괴력과 회심의 깊이를 한얼굴
에 담으며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평범할 수도 있는 이
사회극은 덕분에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됐다.

백인 우월주의조직 핵심 멤버 데릭(노튼)은 차를 훔치려던 흑인 두명
을 죽인다. 데릭이 감옥에 있는 동안 동생 데니(에드워드 펄롱)는 차츰
형을 닮아가며 스킨헤드족이 된다. 3년뒤 출옥한 데릭에게서 데니는 유
색인종을 몰아내는 백인영웅 모습을 기대하지만, 데릭은 전혀 다른 사람
이 돼있다.

'아메리칸…'은 흑백과 컬러를 교차해가며 증오와 화해 이야기를 조
곤조곤 들려준다. 흑백으로 처리한 과거장면들은 강력한 비주얼, 사실적
대사로 증오의 에너지가 넘친다. 흑인을 살해하는 첫 장면은 다큐적인
흑백질감에 강렬한 합창, 고속촬영을 더해, 관객을 단숨에 인종분쟁 용
광로로 빨아들인다. 평화로운 가족 식사 자리가 논쟁끝에 싸움판이 되거
나, 수퍼마켓을 습격해 테러하는 장면에도 힘이 넘쳐난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컬러장면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맥이 빠져
있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 가슴에 남는 게 '분노로 찌들어 살기에 인생
은 너무 짧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증오와 테러의 강력한 시각효과'일
수도 있다.

형제가 어떻게 왜 개안하게 되는지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에드
워드펄롱도 '터미네이터 2'와 '비포 앤 애프터'에서처럼 우울하고 깊은
눈으로 호연했다. 그런 눈이기에, 증오의 죄를 한몸에 지고 희생양으로
쓰러지는 종반부 대속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 이동진기자 dj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