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는 당황과 혼란 속에서 시작됐다. 20년대의 마지막 해 10월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은 곧 전세계로 파급됐다. 세계 자본주의는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했으며 머지않아 붕괴할 것처럼 보였다.
1929년 미국은 세계 총생산량의 42%를 생산하는 초강대국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런 미
국이 자국경제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국외 채권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하
자 주대상이던 유럽의 경제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공황이 휩쓸던 1934년 시카고 길거리의 구직자들.
전세계 경제는 얼어붙었다. 세계 무역량은 29∼39년 3분의1이 줄어
들었고 미국은 같은 기간동안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1900∼14년 1500
만명, 1915년∼29년 550만명을 전세계로부터 이민으로 받아들이며 세계
경제발전을 이끌어갔던 미국은 1930년∼45년 불과 75만명을 수용했을
뿐이다.
불황과 실업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3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인 전체주
의 대두를 부채질했다. 1933년 1월 독일 총리가 된 히틀러는 의사당 방
화 사건(2월)과 총선거(3월)를 거치며 '국민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비상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는 유럽 최대 채무국이었던 독일이 대공황
으로 겪게 된 곤경을 바탕으로 '독일 영광 재현'을 내걸고 사회 통제와
군비 확장을 추진했다. 1922년 파시스트 군단을 동원해 정권 장악에 성
공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 부활을 꿈꾸며 1935년 에티오
피아를 정복했다. 아시아에서는 또 하나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군부주도 아래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중국 대륙 침략을 본격화
하기 시작했다.
전체주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24년 레닌이 사망
한 후 치열한 권력 투쟁을 거쳐 정권 장악에 성공한 소련의 스탈린은
급격한 공업화 정책과 함께 1934∼39년 약 300만명을 처형하는 피의 대
숙청을 벌였다.
또 공산 혁명 수출을 위해 만들어진 코민테른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의 위기를 공산 혁명 호기로 간주하고 각 지역에서 계급 투쟁을 고취했
다.
세계 대공황의 도화선이었던 미국 경제는 1932년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재선을 거듭하며 꾸준히 펼친 '뉴딜 정책' 결과
30년대 후반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점차 공격성을 더하던 히틀러가 마침내 1938년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
키아를 점령하고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또 한 차례 세계대전의
불을 댕겼다. 이에 앞서 아시아에서도 1937년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시
작함으로써 인류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됐
다.
강대국들이 주역이 됐던 이같은 세계사 무대 이면에서는 인류 앞날
에 큰 영향을 미칠 움직임이 제3세계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내세우며 5억 인도인을 이끌고 영국에
대해 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9600㎞를 행군
하는 대장정(1934년)의 역경을 넘기며 혁명의 꿈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처럼 어수선한 가운데도 인류의 생활상 진보는 꾸준히 이루어졌다.
1934년 '마법의 실' 나일론이 개발됐고 1938년에는 필기와 인쇄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은 볼펜과 복사기가 처음 선보였다. 또 1936년 11
월 영국의 BBC, 1939년 4월 미국의 NBC가 각각 정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함으로써 인류는 이제 소리 시대에서 영상 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
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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