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림 지키려 나무위 투쟁 줄리아 힐, 본지와 전화인터뷰 ##.
♧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태평양 연안. 레드우드(삼나무의
일종) 숲이 하늘을 찌를 듯한 이곳에 '인간 나비'가 살고 있
다. 이름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24·여). 목재회사의 벌목을
몸으로 막겠다며 시위중이다.
힐이 20층 건물 높이의, '루나(달)'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에
오른 것은 지난 97년 12월 10일. 지금까지 1년 넘게 나무 위에
살며 태풍과 목재회사의 위협을 견뎌냈다. 그녀는 "레드우드 숲
이 환경보존 지역으로 설정돼 영구히 지켜진다는 약속이 있을때
에만 땅에 발을 딛겠다"는 입장이다.
1년 넘게 제대로 씻지 못한 이 '나비'의 몸에서는 레드우드
나무 냄새가 난다고 한다. 환경운동가로 주목받는 힐은 하루 종
일 인터뷰에 응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에
환경단체에서는 가급적 전화 통화만 허용하고 있다. 그녀를 만
나려면 숲속으로 2∼3시간 걸어가야 하는데다, 나무를 오르던
기자가 겁에 질려 부축을 받고 내려와야 한 적도 있다. 태양열
전지판이 달린 핸드폰으로 나무 아래 세상과 교신하고 있는 힐
과 지난 3월20일(한국시간) 국제전화로 만났다.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데 주위 풍경은 어떤가.
"지금은 해가 져서 어둡다. 환할 때는 멀리 일(Eel) 강과 계
곡, 정상이 눈으로 덮인 산이 보인다. 그러나 바로 눈 앞에는
나무가 베어진 민둥산이 펼쳐져 있다. 또 대규모 벌채가 불러온
산사태로 휩쓸려 버린 민가의 잔해도 보인다. 인간의 횡포가 남
긴 상처이다.".
--얼마나 높이 올라가 있나.
"나무의 키는 60m. 내가 임시 거주지를 마련한 곳은 지상에
서 55∼56m쯤 된다. 나무의 나이는 1000살이다.".
--나무 이름이 왜 루나인가.
"목재회사 사유지에 접근할 수 없던 환경운동가들이 한밤중
에 몰래 나무 위에 임시 거주지를 지었다. 당시 밤을 환히 밝히
며 작업을 도운 보름달에서 나무의 이름을 따왔다.".
--나무 위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환경단체가 보내주는 식량을 밧줄로 끌어올린다. 손으로 돌
려 발전하는 라디오와 태양열 휴대폰 외에 가스 버너도 있다.몸
은 빗물을 받아 씻는다.".
--겨울을 어떻게 났나.
"겨울에는 바지를 여러 겹씩 껴입고 이불을 8채씩 쓰고 잔다.".
--미 정부와 목재회사측 협상이 성사됐다고 하는데 왜 나무
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건가.
"이번 협상은 정부가 회사측에 벌목에 대한 법적 허가를 내
려준 꼴이다. 2군데의 숲을 보호하는 대신 수천 에이커의 숲을
내줬다. 보다 많은 지역이 환경보존구역으로 지정돼야 한다. 언
제 내려올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더 살릴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다.".
--나무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글쎄다. 나는 큰 퍼즐을 맞춰나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백년간 계속된 벌목 등 환경파괴 관행을 어떻게 금새
바로잡을 수 있겠나. 내 목표는 루나를 비롯한 레드우드 나무를
지키고 세상을 향해 산림 보호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레드우드란 어떤 나무인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키가 크고, 가장 둘레가 넓
은 나무중 하나이다. 보통 수령이 수천년에 이른다. 큰 나무는
높이가 90m, 직경은 9m에 이른다. 레드우드 숲은 온대 우림으로
어류와 조류 등 여러 희귀 종과 인간의 생존에 중요하다. 헤트
워터 숲 벌목으로 산사태가 발생, 민가를 덮치는가 하면 시내와
강이 오염되기도 한다.".
--나무 위 투쟁에 대해 목재회사측은 어떻게 나오고 있나.
"열흘 동안 나무를 에워싸고 식량 공급을 막기도 했다. 헬리
콥터가 윙윙거리며 나무위를 맴돌기도 하고 연기를 피우기도 했
다. 엘 니뇨가 몰고온 최악의 폭풍 때문에 날려갈 뻔 하기도 했
지만 루나주위의 레드우드를 베어내는 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괴롭다.".
--무섭지 않나.
"무섭다. 그러나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연이 무참히
파괴된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두렵게 한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전화 통화로 하루가 다 간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환경
운동 동지들과 전략을 논의한다. 정치인들과 퍼시픽 럼버 회사
에 편지도 쓴다. 마을 축제, 학교 행사, 세미나, 회의에서 전화
로 연설하기도 한다. 시를 쓰거나 그림도 그리지만 자주는 못한
다. 내 평생 이렇게 바빴던 적이 없다. 처음 나무에 올라갈 결
심을 했을 때는 솔직히 좀 무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는
데, 이처럼 할 일이 많을 줄 몰랐다.".
--이름이 '줄리아 버터플라이(나비) 힐'인데.
"이곳 환경운동가들 중 많은 동지들이 숲에서 따온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당국의 탄압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고 뜻을 같이
한 이들끼리 일체감을 갖기위한 목적도 있다. 환경운동에 동참
하면서 나는 새로 이름을 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일곱살 무
렵, 산길을 걷던중 나비 한 마리가 내 머리위에 앉아 몇 시간씩
떠나질 않았다. 그 때부터 내 이름 줄리아와 힐 사이에 버터플
라이를 집어넣었다.".
--퍼시픽 럼버 회사는 지역 경제에 이바지해 왔는데 벌목을
중단하라는 것은 주민들에게는 생계를 포기하라는 얘기 아닌가.
"원래 퍼시픽은 토착 회사로 경영진부터 말단 직원까지 마을
주민이 대부분이었고 제한적인 벌목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회사가 넘어가면서 마구잡이식 벌목이 시작됐다. 물론 일자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숲을 깡그리 밀어버린다면 어차피 나중에 일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회사는 이곳 나무를 모조
리 베어버린 뒤 이익을 챙겨 다른 곳으로 뜨면 그만이다. 나중
에 소중한 숲을 잃고 땅을 쳐도 소용없다. '경제'라는 단어에는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이들이 경제 운
운 하지만 사실 행위를 놓고 보면 경제와 거리가 멀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아버지가 '유랑' 목사셨다. 캠핑 카를 타고 여행하고, 교회
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무에 올라간 계기는.
"처음 레드우드 숲을 보고는 충격과 감격으로 엉엉 울었다.너
무 아름다운 숲과 바로 옆 벌목으로 발가벗겨진 대지가 끔찍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엄청난 나무들을 보면서 인간보다 훨
씬 큰 어떤 힘에 압도당한 듯 했다. 대자연 앞에 겸허해진 기분
이었다.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은 원대한 자연과 우주의 섭리라
고 생각한다. 나무를 함부로 베고 자연을 망치는 것은 자연의
조화를 헤치는 행위이다. 흔히 인간이 살기 위해 나무를 벤다고
하는데 사실은 파멸에 이르는 길이다.".
--벌목공들과 자주 마주칠 텐데.
"나무에 오르는 벌목공들과 대화를 하면서 설득하고 있다. 친
구도 많이 만들었다. 험담을 퍼붓는 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기
도 한다.".
--사진을 보니 나무에 "어른을 공경하라"는 구호판이 걸려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나이 많은 어른은 존경하라고 배운다.현
명한 이들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꼭 대
통령이나 위인들만 공경하나. 수천년 나이를 먹은 나무를 존중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공동체 농장을 꾸미고 싶다. 아이들을 많이 입양해서 자연
과 조화하며 살아가게 해주고 싶다. 인구 증가로 폭발 직전인
지구에 내가 또 하나의 생명을 낳기는 싫다. 고아원 어린이들은
일곱살만 넘으면 아무도 입양을 원치않는 미운 오리새끼가 된
다. 나는 일곱살이 넘는 어린이들만 데려오고 싶다. 그동안 부
지런히 모아온 돈은 모두 레드우드 살리기 운동에 기부해버렸
다. 그러나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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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헤드워터 숲
대표적 지구촌 환경보호 투쟁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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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헤드워터 숲은 미국에서 마지막 남은 레드우드
서식지로 가장 격렬한 환경보호 투쟁 현장이기도 하다. 헤드워
터 숲을 소유한 퍼시픽 럼버 목재회사를 대상으로 그동안 10년
넘게 나무를 지키겠다고 투쟁해온 환경운동가중 몇명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높이 60m가 넘는 레드우드는 아메리카산 삼나무로 수령은 보
통 1000년∼1만년에 이른다. 목재로 쓰이는 나무 한 그루 값은
10만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1863년 설립돼 비교적 환경친화적인
벌목 작업을 벌여온 퍼시픽 럼버는 지난 86년 한 투자회사에 인
수되면서 벌목에 적극 나서게 됐다.
곧 '지구 먼저!'라는 단체를 비롯, 수많은 환경보호 운동가
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몸으로 벌목을 막겠다며 나무에 올랐
다. 회사측은 이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특수요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2일에는 미국 정부가 퍼시픽측에 4억8000
만달러를 지불하면서 일부 지역 레드우드 벌목 중단을 이끌어냈
다. 그러나 환경운동단체들은 협상안 내용이 레드우드 보호에
미온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