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비던스:
기자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시의 리즈디를 방문한
2월19일은 정말 화사한 봄 날씨 같았다. 언덕배기에 아담하게
들어선 리즈디 대학 건물들은 따사한 봄기운에 하나 둘 기지개를
펴고 있었고, 학생들은 반팔 차림에 가방을 둘러매고 짝을
지어다니며 낭만을 맘껏 즐겼다. 캠퍼스 분위기가
예술대학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민속촌같다는 느낌이
든다. 프로비던스시는 리즈디 일부 지역을 역사 보전지역으로
지정했을 정도. 건물 대부분은 높아봐야 4∼5층짜리 벽돌
건물이다. 디자인 센터가 들어있는 메트카프 빌딩만이
10층쯤된다.

프로비던스시는 마치 전원도시 같은 인상을 주기 싶상이다. 모든
게 조용하다. 그러나 뚝심있는 도시라고 보면 된다. 사실 미국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보스톤 티 파티]보다 1년 앞서
항영투쟁이 벌어진 곳이 바로 로드아일랜드다.

로저 윌리엄스는 1636년 종교의 자유를 천명, 로드아일랜드를
세웠다. 그 자신이 매사추세츠주로부터 종교적 탄압을 받은
피해자였다. 로드아일랜드는 또 미국 초기 13개주중 헌법을 맨
마지막으로 승인한 주다. 인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들어가야한다고 주장한 것. 이게 그 유명한 [Bill of Rights]다.
[종교의 자유]와 [인권보장] 때문에 노예제도를 맨 먼저 폐지한
곳도 바로 로드아일랜드이다. 오늘날 우리가 늘상 듣는
인권운동의 효시가 바로 로드아일랜드인 셈이다.

이덕분에 로드아일랜드에는 미국의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마디로 리버럴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그러다보니 예술인들의 낙원으로 자리잡게 된다. 지금도
예술하는 사람들이 로드아일랜드에 많이 모여 산다.
로드아일랜드는 1800년대 후반에는 가구업과 섬유업이 특히
발달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1877년 섬유업으로 큰 돈을 번
메트카프 가문에 의해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이
설립됐다. 처음엔 의상디자인과 섬유디자인에 중점을 둔 학교로
출발했지만, 디자인 전반으로 확대됐고, 해가 갈수록
미술계에서는 알아주는 예술학교로 성장한다.

리즈디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브라운대학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교가 갈린다. 리즈디
학생들은 거의 자유롭게 브라운대학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두
학교가 학생들에게 상호 학과 및 시설물을 개방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리즈디 학생들은 브라운대학의 도서관 시설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반면, 브라운대학 학생들은 리즈디가
보유하고 있는 일급 박물관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식이다.

일부 시설물에 대해서는 리즈디가 브라운대학측에 얼마를
지불한다고 한다. 그러나 두 학교가 공생관계에 있
다고 보면 된다. 또 브라운 남학생- 리즈디 여학생 커플이 많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그렇게 만나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이 꽤 된다.


이번에 미술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학교 관계자들에게 기부금 액수, 박물관 운영비, 교수
논문 연간 발표 수치 등 통계를 자꾸 물어보니까 처음엔 짜증을
냈다. 에드워드 드와이어 부총장은 수치에 대해 거의 무감각했고,
닐 세브란스 학생처장도 물어볼 때마다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게 더 많았다. 이들은 미술을 전공한 건 아니었지만, 거의
예술인에 가까울 정도로 추상적인 답변을 늘어놓았다. 한마디로
[팩트]는 없고, 형용사만 있었다. 때문에 이들을 직접 만나서
기사를 쓰는데 도움을 받은 게 거의 없을 정
도.

그래서 혼난 사람이 바로 홍보실의 패티 오비소양이다.
로드아일랜드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고 한다. 너무
꼬치꼬치 캐물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오비소양은 "뉴욕타임즈도
그랬을 것"이라면서 더 열성적으로 도와줬다. 리즈디측에 맨
처음 이메일을 보낸 게 2월 초순이었고, 기사가 게재되기 직전인
3월13일까지도 이메일을 주고 받았으니까, 거의 한달 가까이
취재한 셈이다.

◇리즈디 취재:

미국 출장을 가기 전엔 리즈디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었다. 그저
잠깐 들러 대충 구경하고 올 생각이었다. 옛날 대학다닐때 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반나절만 시간을 할애해두었다.
보스톤에서 한시간 거리였다. 그런데 오비소양이 이메일로 "1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까지 부총장, 학생처장, 한국인 유학생 등
인터뷰를 마련해놓았는데 오겠느냐"고 물었다. 지성에 감복하고
말았다.
19일 기자를 안내한 사람은 닐 세브란스 학생처장. 우리나라
세브란스 병원의 설립자 가문 출신이다. 직계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구경을 하면서 가장 놀란 건 디자인 학과도 아니고, 수업도
아니었다. 바로 [Nature Lab]이었다. 해골, 곤충, 사슴
박제에서부터 온갖 식물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모두
7만가지나 있다고 한다. 큐레이터 캐런 이드윈씨는 "하루에
100명 정도가 와서 스케치하고 간다"고 말했다. 세브란스 처장은
"디자인의 근본은 바로 자연"이라면서 "자연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디자인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다소 철학적인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이게 리즈디의 장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방문한 곳이 박물관. 유지비용만 연간 5백만달러가
든다고 한다. 이 박물관은 세잔느, 모네, 마네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 한두점은 모두 소장하고 있었다. 세브란스 처장은 또 시가로
1100만달러짜리 가구 2점이 소장돼 있다고 자랑했다. 전세계에
5개 밖에 없는데 2점이 리즈디 박물관에 있다는 것이다. 존
가다드라는 가구 디자이너가 만든 건데,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장은 가다드 가구를 경매할때 진품 여부 확인을 위해 리즈디
박물관에 와서 서랍을 맞춰본다고 한다.

◇학교:

380명의 신입생은 의무적으로 1학년때 기숙사에서
생활해야한다. 같이 먹고 자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수업도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똑같이 듣는다고 한다.
18개 반으로 나뉘어지는데, 거의 고등학교 생활로 되돌아가는 셈.

한가지 특이한 것은 리즈디 학생이면 졸업할때까지 매학기 철학,
사회과학, 역사학 등 인문학과 수업을 들어야한다는 점. 에드워드
드와이어 부총장은 "철학이 없으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고,
논리가 없으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거나 남의 작품을 비판할 수
없다"고 했다. 리즈디 출신들은 그래서 비평에 강하다고 한다.

한국인 학생들에게 토플 580점 이상을 요구하는 것도 비평을
해야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드와이어 부총장의 최대 고민은 교수들을 붙잡아두는 것. 다른
학교에 많이 빼앗긴다고 했다. 3월26일자로 박물관 부관장이
볼티모어 박물관장으로 갈 예정이고, 건축학과 교수도
하버드로부터 제의를 받았는데, 연봉을 올려줘 가까스로
붙잡았다고 했다.

하버드나 예일대가 호시탐탐 리즈디 교수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돈 많은 학교에서 고액 연봉과 온갖
기회를 제공하는데 안 넘어갈 교수가 거의 없다는 것. 대학원에서
섬유디자인학을 전공하는 박정화씨도 "리즈디 섬유학과의 유명
교수를 보고 입학했다"면서 "교수가 훌쩍 더나면 큰 낭패"
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리즈디 교수들은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부엌 디자인 :

리즈디는 지난 5년동안 인간 친화적인 부엌을 만드는 [유니버설
키친 프로젝트]를 지난해말 완성했다. 50년동안 부엌만큼은
디자인이 변하지 않았다는데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한다.
노인, 키 작은 사람, 키 큰 사람, 어린이, 장애인 등 어떠한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부엌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교수들은 학과장 집에서 모여 스파게티를 만들어보았다.

부엌에서 재본 걸음걸이는 모두 400보였다는 것. 쓸데없이
왔다갔다하는 등 비효율적이었다는 것. 새로 디자인한 부엌은
똑같은 스파게티를 만드는데 100걸음밖에 안
든다고 한다. 뉴욕 쿠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중이며,
가구회사들이 접촉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