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말 개봉한 브라질 영화 '중앙역'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찾아나선 소년 조슈에의 여정을 다룹니다. 조슈에는 우연히 알게
된 전직 여교사 도라도움으로 아버지 흔적을 밟아나가지요.
소년은 '땅끝'으로 불리는 마을까지 가지만 허탕을 칩니다. 그
래도 그는 아버지가 곧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거기서 만난 이복
형제들과 새로 가족도 이루지요. 테오 앙겔로풀로스 '안개속의 풍
경'에서도 어린 남매가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온갖 험난한 일을
겪으면서도 남매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무엇보다 희망을 뜻합니다. 희망이 어떻게 이
뤄질지 알지 못해도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삶이라는 길을 떠나는
거죠. '중앙역'에 등장하는 마을 이름 '땅끝'은, 바닥에 이르는
최악 상황에서야 희망이 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겠지요. '안개속
의 풍경'에 내내 짙게 드리운 안개는 그 희망이 얼마나 모호한지
말하지요. 술주정뱅이지만 어머니를 정말 사랑한 조슈에 아버지는
곧 희망이 얼마나 남루하면서도 소중한가를 드러냅니다.
초라해도 희망이 필요하다는 데엔 대부분 공감하실 테지요. 그
렇다면 '거짓 희망'은 어떨까요. '중앙역'에서 도라는 문맹자들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지만, 부치지 않은 채 버립니다. 주세페 토르
나토레 '스타메이커'의 사기꾼도 배우 오디션을 한답시고 필름도
없는 카메라로 돈을 벌지요.
여기서 희망이 '거짓'이라면 그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겠지
요. 하지만 그 희망을 거짓으로 만든 것은 꿈꾸는 사람들이 아닙
니다. 설사 벽에 부딪칠 게 뻔하고, 착취당하기까지 해도 여전히
희망은 소중한 게 아닐까요.
희망에서 정말 중요한 건 내용이나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형식
이고 상황입니다. 희망은 때로 대상도 없이 막연한 느낌이기도 합
니다. '중앙역'과 '안개속의 풍경'에서 아버지가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은 희망이 얼마나 추상적인지 보여줍니다. 허공에 손을 내
저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바람같은 것(진수감풍). 그래도 우린
희망을 꿈꿀 수밖에 없지요. 왜냐면 희망은 삶에 동력을 주는 증
기기관 같은 것이고, 그 자체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
니다.
모든 게 필연이라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고 모
든게 우연이라면 희망은 설득력을 잃을 거고요. 필연과 우연이 섞
여 요동치듯 삶을 이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모퉁이를 돌아
설 때마다 희망과 마주칠 수있으니까요. (* dj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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