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떠도는 도시 야화 가운데 가장 섬뜩한 것이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다.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담아 은밀히 유통한다는 이 필름은,과
포화상태로 추하게 넘쳐 흐르는 욕망과 뒤틀린 인간 마성의 도달점을 상
징한다. 스너프가 실존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스릴러 '8㎜'(Eight
Milimeter·6일 개봉)는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평범한 사립탐정 웰즈(니컬러스 케이지)는 부호 미망인으로부터 큰
건을 의뢰받는다. 이 할머니는 남편 유품에서 발견한 8㎜ 필름 릴에 소
녀가 난자당해 죽는 모습이 담겨있는 데 충격을 받고, 스너프인지 연출
작인지 가려달라고 부탁한다. 웰즈는 소녀 신원을 밝혀낸 뒤, LA 뒷골목
성인용품점, 섹스클럽과 지하 포르노시장을 헤매며 실체에 접근해간다.
'8㎜'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조엘 슈마허 감독, 앤드루 케빈 워
커 각본, 그리고 니컬러스 케이지의 만남이다. '배트맨 포에버' '타임
투킬'같은 상업 대작들을 연출해온 슈마허는 자못 심각한 주제를 가라앉
은 톤으로 다룬다. 워커는 '세븐'에서 치밀한 내면 묘사와 함께 인간의
악마성을 음침하고 비관적으로 다뤘던 신세대 작가. 다양한 장르를 섭렵
해온 케이지로서도 '8㎜'는 가장 어두운 출연작이다.
세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관객을 역겨운 어둠으로 끌어들인다. 금방이
라도 스너프의 칼날이 튀어나올듯한 긴장을 유지한다. 특히 케이지는 도
착 세계로 한발씩 빨려들며 분노를 키우는 주인공을 잘 소화했다. 케이
지와 파트너가 되는 펑크풍 포르노샵 주인 조아킨 피닉스도 영화에 색다
른 방점을 찍는다. 광각렌즈를 구사하는 촬영과 구성진 중동풍 음악이
도착적 분위기를 돋운다.
하지만 관객 심장을 오그라뜨리듯하던 '세븐'에 비하자면 이번 워커
각본은 단순하다. 특히 종반은 너무 상투적이다. 주인공은 스너프 현장
과 맞닥뜨린 뒤 갑자기 악을 응징하는 액션 영웅으로 돌변하고, 결말은
도덕주의적 영웅담이 돼버렸다. '세븐' 같은 염세적 여운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