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를 움직였던 쑹메이링(송미령) 여사가 만 102세를 두달 앞둔 요즘
신변을 정리하고 있다.

고(고) 장제스(장개석) 대만 총통의 미망인 쑹 여사는 지난해 뉴욕의 35에이커(약
4만5천평)짜리 대저택을 처분했고, 지난 30일에는 소장품 일부를 경매에 부쳤다.
쑹 여사가 소장하고 있던 산수화(산수 ) 족자와 런던서 구입한 성당 시계, 85년된
수정 샹들리에와 가구, 침대 세트 등이 나온 이날 경매에는 현지 화교 1만여명이
운집, 기마 경찰까지 동원되는 성황을 이뤘다.

쑹 여사는 중국 최대의 부호 쿵샹시(공상희)의 부인이 된 아이링(애령), 중화민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손문)의 부인이 된 칭링(경령)과 함께 송씨(송씨) 세 자매 중
유일한 생존자. 세 자매 모두 중국 근대사의 증인으로 "첫째는 돈(공상희)과,
둘째는 중국(손문)과, 셋째는 권력(장개석)과 결혼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 자매의 일대기를 그린 [Song Dynasty(송씨왕조)]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쑹 여사는 지난 20여년의 칩거 생활에도 불구, 귀가 좀 어두워졌을 뿐 아직도
건강한 편이라고 한다. 비결은 산책과 서예, 그림과 독서, 차마시기로 심신을
가다듬는 도가식 생활 습관 덕분이라고 한다. 자식이 없는 그녀는 지난해
뉴욕 퀸스의 한 미술 전시회를 끝으로 사교계에서 모습을 감춘 뒤, 맨해튼 동부의
한 아파트에서 비서와 요리사, 간호원 등 10여명과 조용한 만년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은 지금도 살아있다. [가장 존경할 만한 여성]으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는가 하면, 지난 97년 100세 생일때는 대만 국민들 수십만이 축하
서명을 보냈다. 당시 그녀의 뉴욕 자택에는 붉은 장미 100송이와 예물이
쇄도했다. 중국의 항일전쟁과 대만 도피후 중국공산당과의 싸움에서
미국이란 방패를 끌어들인 당찬 [퍼스트 레이디]였기 때문이다.

1943년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일본을 우방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일본의 상하이 폭격을 철로 위에서 우는
중국 아이의 사진 한장으로 격퇴한 그녀는 당시 미국과 중국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장제스와 함께 49년 대만으로 건너가 타이베이(대북)에서
거주하다가 장제스 총통이 사망한 지난 75년 미국 뉴욕으로 가 롱아일랜드에서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