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웅(한글학회 이사장).

조선일보는 우리 나라 신문 가운데 그 발행 부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조선 일보가 오랫동안의 비바람을 이겨냈기 때
문임은 물론이지만, 그보다 그 내용이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제작 형식에 있어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없지 않
다. 첫째, 조선일보가 아직 세로쓰기(내리쓰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는 점이다. 사람의 글읽기는 세로보다 가로가 능률적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의 눈이 가로로 되어 있기 때문인지 모르지
만, 가로로 볼 수 있는 거리는 세로보다 넓다. 짤은 수평선 AB의 중간
점 C에서 수직으로 같은 길이로 CD를 그어놓고 두 선의 길이를 눈으로
비교해 보면, CD가 AB보다 더 길어 보인다. 이것은 아마 내리보기가
가로보기보다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내리쓰기를 버리고 가로쓰기를 실시한 지 오래
다. 초-중-고의 교과서는 모두 가로로 되어 있고, 대학의 교재도 모두
가로이다. 그뿐 아니라, 여러가지 출판물들이 이젠 거의 다 가로로 짜
여 나오고 있다.

각 대학의 신문들도 이젠 모두 가로이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일간신문들도 이젠 거의 가로이다. 아마 조선일보를 빼놓고.

이것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다. 일본 대만을 빼
놓고 세로 쓰는 나라가 어디 또 있는지 잘 모르겠다.

둘째, 조선일보가 아직까지 한자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나라 사람들의 글자살이(문자생활)의 실태는 거의 한글
전용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일반 출판물, 학술 서적, 각 대학의 신문
들도 한결같이 한글만을 쓰고 있다. 심지어는 한글 전용의 길을 막고
있던 마지막 보루인 일간 신문도 이제는 한글 전용으로 향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광복 바로 뒤부터 한글 전용을 실시하여, 지금은 그 글
자살이가 완전히 한글전용으로 굳어져 있다. (다만 중학교에서 '한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에 살고 있는 2백만 우리 동포들
의 글자살이도 이와 같다. 그분들이 발행하는 모든 우리말의 출판물은
완전한 한글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우리 말살이(언어생활)도 한글에
맞는 방향으로 다듬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한문 글자에 대한 한글의
절대 우수성에 있는 것이며, 이것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인민족
자주, 민본 정신의 승리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가 아직 한자에 미련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조선일보 제작자들은 이
말이 귀에 못마땅하게 들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몸에 좋은 약은 입
에는 쓰다고 하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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