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38) 감독이 돌아온다. 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을 얻어내며 그는 단숨에 한
국영화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어 밴쿠버, 로테르담 등 많은 해외 영화
제에서 화려한 수상 기록을 남겼다.
2년만에 선보일 두번째 작품은 '강원도의 힘'이다. 불륜에 빠진
남녀가 각기 따로 강원도를 여행하며 겪는 일들을 그린다. 3월말 개봉
예정으로 현재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설명 :
"항상 내 자신에 충실하려 노력할 뿐, 전편의 성공때문에 특별히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홍상수 감독.
강원도의 힘? "영화내용과 독립적인 맛을 갖는 제목을 좋아할 뿐,
딱히 무엇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휴양지를 의미하는 '강원도'
와 영향력을 뜻하는 '힘'을 붙여놓으니 뉘앙스가 재미있어지더군요.".
원작 '낯선 여름'의 내용을 완전히 뜯어고쳐 영화화한 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고 엉뚱하게 제목을 붙였던 감독답다.
그 전작은 남루하고 군내나는 일상을 차갑고 정교하게 그려냈다.
반면 신작에서 주인공이 따로 강원도를 여행한다는 설정은 '비일상'에
대한 탐구로 여겨진다. 그렇게 보면 제목 역시 비일상의 자장을 통과
하며 겪는 변화에 대한 언급같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속 인물들은 강원도에서도 같
은 일들을 합니다. 결국 장소만 다를 뿐, 비일상도 일상일 뿐이지요.".
주연 백종학과 오윤홍은 영화연기 경험이 전혀 없고, 그래서 관객
들에겐 생소하다. 데뷔작으로 거둔 놀라운 성공이 제목에서 캐스팅까
지 그에게 폭넓은 권한을 부여한 셈이다.
"무명배우와 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 고정 이미지가 없기에 관
객이 제대로 보아낼 수 있지요. 무명배우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배
웠습니다.".
멜로영화는 전혀아니지만, 신작 역시 전작처럼 불륜을 다룬다. 낡
은 소재로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인물을 설명하느라 꼭 가족과 성장과정을 묘사해야 하는 건 아닙
니다. 커피 한잔 마시는 모습을 관찰하면서도 가능하지요. 그렇게 상
투적인 소재를 독특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뻔한 일상이
좀 다르게 보여지길 바랍니다.".
이를테면 팬들은 그가 커피 마시는 걸 힐끔거리고 싶어한다. 그 모
습에 흔하고 지루한 일상이 새롭게 담겨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 이동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