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초강세… 정부 의지와 대기업 부도가 변수 ##.
'1달러= 9백원' 시대가 열렸다.
금융결제원은 8월26일 원·달러 환율(매매 기준율)을 달러당 9백3원
40전으로 공시, 90년 3월 시장평균환율제가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9백원
을 돌파했다. 정부도 달러당 9백원을 용인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에서 한
발짝 물러서 "달러당 9백원 내외에서 운용하겠다"고 밝혀, '1달러= 9백
원'시대 개막을 공식화했다. '1달러=9백원'의 징후는 8월 중순부터 강하
게 일기 시작했다.
지난 8월18일 서울 외환 시장에서 외환 딜러와 한국은행 사이에 한
판 싸움이 펼쳐졌다. '9백원선' 고지를 놓고 밀고당기는 접전이 벌어진
것. 한국은행은 달러값이 9백원을 뚫으면 시장이 투기장으로 변할지 모
른다는 판단에 따라 9백원에 비공식적인 '방어선'을 쳐놓고 딜러들의
9백원 돌파를 저지하느라 목숨을 걸었다. 한국은행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달러값이 폭등해 국내 진출한 외국계 자본들이 거액의 환차손을 볼 경우
이들이 한국을 떠나는 불상사가 발생, 외환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
다는 우려감이 앞섰던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외환 딜러들이 9백
원돌파를 '테스트(시도)'할 때마다 보유 달러를 시장에 무차별적으로 내
다팔면서 달러값 폭등세를 진정시켰다.
● 2년짜리 원화 선물환은 이미 1천원 넘어.
외환 딜러들은 한국은행과 완전히 반대 입장에 서 있었다. 달러값이
뻔히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형편. 무
조건달러를 사놓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일부 외국계 은행 서울
지점이 달러를 대량으로 매입하기 위해 원화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는 루머까지 흘러나오자 시장 참가자들의 투기 심리는 발동하기 시작했
다. 이날 외환 딜러들은 9백원을 일시적으로 뛰어 넘어 9백원 맛만 보
고 후퇴해야 했다.
열흘 뒤인 25일. 외환 딜러들의 9백원대에 대한 끈질긴 집념은 마침
내 결실을 맺었다. 한국은행이 고집을 꺾고 외환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
여 외환 딜러들의 9백원 점령을 허용한 것. 9백원을 돌파한 외환 딜러
들은 26일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시장이 열리자마자 '달러
사자'에 나서 심리적인 저지선인 9백5원마저 단숨에 무너뜨리며 진군했
다. 달러값은 한국은행이 '투기 세력은 좌시하지 않는다'는 구두 경고
만 하고 직접 시장 개입에나서지 않자 달러당 9백9원50전까지 한순간에
올라갔다. 급기야 한국은행이 점심 시간을 이용, 시중 은행 외환 딜러
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환율은 너무 높은 수준이므로 시장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협박성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오
후장들어 한국은행은 시장 개입에 나서고 환율은 8백99원80전까지 급강
하했다.
서울 외환시장말고 원화 인수·인도 없이 미래 환율로 거래하는 싱
가포르등 동남아시아 지역 원화 선물환(NDF) 시장에서도 달러값은 초강
세를 유지하고 있다. 평소 하루 거래량이 1억∼2억달러에 불과하던 NDF
시장에서 최근 들어 거래량이 3억∼4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NDF시장에서는 달러값 9백원 돌파를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 달러값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싱가포르 NDF 시장의 한 딜러는
"대만이나 필리핀 등은 최근 3개월 동안 자국 통화가 달러에 대해 15∼
30%까지 평가 절하된 반면 원화는 1.5% 내외에서 절하됐다"면서 달러
가치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에 따라 1년짜리 원화 선물환
가격은 달러당 9백9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2년짜리 원화 선물환은
1천원이 넘어선 상태.
● "수출 경쟁력 위해 정부가 방치" 시각도.
달러 초강세의 시발점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계 금융기관들에 대
한 달러 대출 기피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 전환 종금사들은 국내외 외
환시장에서 달러를 구하지 못해 달러 대출 상환금도 제때 갚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충분히 달러를 확보하지 못해 달러
를 필요로 하는 기업체에 제때 공급을 못하자 기업체들은 수입 결제용
달러를 미리 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수출 대금으로 받
은 달러마저도 수입 결제 자금으로 쓰기 위해 시장에 내다 팔지 않으면
서 외환 시장에서는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시장
에서는 여전히 달러 강세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상태.
다만 얼마 선에서 환율을 안정시킬 것이냐는 정부 의지에 따라 향후
환율은 추가로 상승할 수도, 현재의 9백원대에서 안정세를 찾을 수도
있다. 사실 시장에서는 1달러 9백원 시대 개막을 정부의 계산된 행동으
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외환 당국이 개입 시기를 놓쳐 달러
값이 폭등한 것이 아니고, 정부가 수출 경쟁력 차원에서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것. 달러·엔 움직임에 원·달러가 비슷하게 움직
여주지 못해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향후 환율 변동의 또 다른 변수는 예기치 못한 제2, 제3의 기아 사
태. 재벌들의 또 다른 부실은 결국 국가 경제 전반에 불안감을 조성,
외환시장도 안정을 찾지 못할 것이란 논리이다.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
홍원재 지배인은 "올해 말까지 환율은 9백원 밑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기아사태에서 비롯된 예기치 못한 금융 불안감이 계속 상존해 있는 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
한 나라의 정치-경제 성적표
----------------------------------------
환율이란 해외에서 우리 돈 구매력(값어치)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우리 돈과 외국 돈의 교환 비율을 뜻한다.
우리나라가 외국과 경제 거래를 할 때는 항상 한국 돈과 외국 돈간
교환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는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나 동전을 낸다. 그러나 외국에 여행을 가서 물건을 구입하
려면 상점 주인이 원화를 받지 않는다. 원화를 미리 외화(달러 혹은 엔)
로 바꿔야만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 반대로 수출업자가 미국에 상품
을 수출하고, 달러를 받았을 경우 이를 다시 원화로 바꿔야 하청업체에
게 원자재 값을 지불하고, 종업원들에게도 봉급을 줄 수 있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외환 시장에서 형성되는 외환에 대한 수요와 공
급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다. 외국 돈에 대한 수요는 외국으로부터 상품
이나 용역을 수입하고자 하는 경우에 일어나며, 외국 돈의 공급은 상품
수출 등에 따라 외환 수입이 있으면 발생한다. 따라서 환율은 국제수지
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 수출이 잘 되어 달러화가
국내로 쏟아져들어오면 우리나라 돈 값이 올라가고, 이에 비해 달러값
은 떨어진다(원화 가치 상승 혹은 원화 절상). 주식 투자를 위해 미국
달러가 우리나라 증권 시장에 들어올 때도 이와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
진다.
반대로 미국 상품을 수입하기 위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 우리나라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가치가 떨어진다(원화 가치
하락혹은 원화 절하). 이처럼 환율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같은 우리나라
돈이라도 미국 돈에 대한 환율, 일본 돈에 대한 환율, 독일 돈에 대한
환율이 각각 다르다.
또한 환율은 물가 상승률과 금리차, 정치사회 안정 여부 등 복합적
요인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또는 인하 정책에 따라 달러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프랑스나 영국
정국이 혼란에 빠지면 프랑화와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곤 한다. 다시
말해 특정 국가 화폐의 환율은 그 나라의 총체적인 정치·경제 성적표
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환율이 안정된 나라는 대부분 경제력과 국내 정
치가 매우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환율이 불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