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은 전문가들이 보기에 참 불가사의한 인물입니다. 중국을 미국 수준의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중국몽’을 내건 분이 정작 중국 경제를 망가뜨리는 일만 골라서 하고 있죠.
지난 수년간 성장 동력인 민영기업들을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통제했고, 개혁·개방 정책도 대거 후퇴시켰습니다. 구시대의 유물인 국유기업이 다시 주역으로 나섰죠. 이런 시대착오적 정책이 올해 부동산 시장 침체와 대규모 청년 실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미크론이 주류종이 된 지금은 코로나 19 초기 때와 같은 과도한 방역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는 것 역시 이해 못할 일이죠. 상하이, 선전 봉쇄로 올 상반기 중국 경제는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출신인 차이샤(蔡霞)는 9월6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시진핑의 약점’이라는 장문의 기고문을 게재했는데, 이 글을 보면 시 주석의 불가사의한 행태에 이해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시 주석을 ‘마오쩌둥의 충실한 학생’으로 평가하면서 오만과 허영, 고집, 열등의식, 낮은 교육 수준 등을 이런 행태의 배경으로 꼽았습니다.
◇‘혁명 가정’ 출신의 엘리트 교수
차이샤는 시 주석과 같은 ‘혁명 가정’ 출신이죠. 친가와 외가가 모두 공산당 군에 투신했고, 아버지는 난징에 있는 인민해방군 부대의 고위간부를 지냈습니다. 그 자신도 10년간 군에서 복무하고 전역해 중앙당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중앙당교는 중국 중앙·지방정부를 이끄는 공산당 엘리트들을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역대 교장 중엔 후진타오, 시진핑의 이름도 있죠. 차이샤는 한때 부교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잘 나가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 하야를 요구하는 등 과격한 발언으로 눈 밖에 나 2020년 당적 발탁을 당했고 미국 망명을 선택했죠.
◇학력 콤플렉스의 기원
시 주석은 1979년 명문 칭화대의 화학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칭화대는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문화대혁명 동안 중·고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공산당 고위 간부 자제들이 당의 추천을 받아 들어가던 곳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북서부 옌안의 시골로 쫓겨간 시진핑 주석도 공농병 대학생 추천을 통해 칭화대에 입학했어요.
당시는 학사관리가 엄격하지 않아 2~3년 대충 공부하고 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칭화대 당 책임자가 입학생 학력 수준이 너무 낮다고 보고하자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칭화대는 무슨 칭화대냐. 그냥 칭화중학, 칭화초등학교라고 해라”고 말했다죠.
마오쩌둥 비서 출신인 리루이는 1980년대 당 중앙조직부 부부장을 지내면서 시진핑을 몇번 만났는데 그의 지적 수준에 대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정도”라고 했습니다. 차이샤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합격한 장쩌민(상하이교통대 졸업), 후진타오(칭화대 졸업) 전 주석과 달리 교육 수준이 낮다는 걸 시 주석 자신도 알고 있다”며 “여기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고 썼어요.
◇출세길 열어준 아버지의 후광
이런 시 주석이 출세길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혁명 원로였던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의 후광과 어머니 치신의 치맛바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겅뱌오 당시 국방부장의 비서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어요. 겅뱌오는 과거 아버지 시중쉰의 부하였습니다.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로 있을 때는 어머니 치신이 허베이성 서기에게 “아들의 앞길을 잘 챙겨달라”는 서신을 보냈다고 해요. 허베이성 서기가 공식 회의 자리에서 이 사실을 밝히는 바람에 시진핑이 난처한 입장이 됐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와 가까운 푸젠성 서기에게 부탁해 푸젠성으로 옮겨갔어요. 푸젠성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이번에도 어머니 치신이 당시 푸젠성 서기인 자칭린에게 편지를 써서 인사 청탁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시중쉰은 시진핑과 전혀 성향이 다른 개혁파 인사로 공산당 내에서 신망이 두터웠어요. 많은 고위 관리들이 아버지를 보고 시진핑을 챙겨줘서 출세길을 달릴 수 있었다는 겁니다.
◇“오른팔 왕치산도 면전서 질책”
학력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시 주석은 원로들의 충고나 아랫사람의 건의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요.
리셴녠 전 주석의 사위로 인민해방군 상장(우리의 대장급)인 류야저우는 2017년 시 주석에 “신장위구르족에 대한 정책을 바꿔야 한다. 위구르족에 대한 구금을 중단하자”는 편지를 썼다가 종적이 묘연해졌다고 합니다. “시 주석의 정책을 함부로 언급하지 마라”는 경고를 받고 외부와 연락이 끊겼다고 해요.
그의 오른팔로 반부패운동을 주도한 왕치산 국가부주석도 상무위원 시절 회의 간소화, 공금 절약 등을 내용으로 하는 중앙기율검사위의 ‘8항 규정’을 당내 공식 제도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가 면전에서 질책을 당했다고 합니다. 시 주석 자신이 생각해낸 것이 아닌 아이디어를 함부로 당내 제도로 제안했다는 이유였다고 해요.
◇“바꿀 수 없는 황제의 칙령”
그의 독선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는 올해 제로 코로나 정책에 관한 결정이었습니다. 올 2월 상하이에서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리자 리커창 총리 산하의 국무원은 60명의 전문가를 소집해 화상회의를 열었다고 해요. 당시 참석자들은 현재의 완화된 거리두기 규정만 잘 준수해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상하이시 측도 이 결론을 지지했다고 해요.
그러나 시 주석은 이 보고를 받고 격노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그대로 지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정책을 변경하는 걸 마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인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게 차이샤의 분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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