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든 자신이 쓴 글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오롯이 담긴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글속에, 그리고 행간 속에 속마음을 들키고 만다. 수천 년 동안 선인들이 가르쳤던 교훈이다. 어제 추미애 법무장관이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제목이 없는 글이었다. 아들 서모씨의 여러 의혹에 대해 입장을 내놓은 글인 것은 알겠는데, 제목이 없으니, 그리고 구체적인 의혹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으니 성격 규정을 하기 애매했다. 첫 보도는 이 글을 ‘사과문’이라고 했으나 우리가 보기엔 차라리 ‘법무장관의 대국민 담화문’ 혹은 법무장관의 ‘대검찰 지시문’ 같았다.

▲굳이 평가를 해준다면, 지금까지는 “소설 쓰시네” 라며 고압적으로 일축해오던 자세에서 벗어나 “국민께 정말 송구합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장만 보고 추 장관이 심경의 변화와 태도 변화를 보였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분량으로 치면 1730 글자 정도인데, 이중 송구하다는 입장을 드러낸 부분은 100글자 정도이다. 나머지 1600글자는 ‘본인은 원칙대로 했을 뿐이며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점을 강변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대충 16대1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16은 ‘나는 전혀 잘못이 없다’, ‘반드시 검찰개혁 하겠다’는 것이고 나머지 1이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정도이다.

▲또 이 글은 1)에서 7)까지 문단마다 번호를 붙였다. 흔히 반성문이나 사과문을 쓸 때는 그 글의 문단마다에 번호를 붙이지는 않는다. 사과의 마음을 물 흐르듯이 죽 이어서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단마다 ‘1), 무엇은 어떻고, 2), 또 무엇은 어떻고, 3), 또 그 결과는 어떻고…’ 이렇게 쓴 글은 글쓴이가 어떤 결의를 다지거나, 또는 상대방에게 조목조목 따져 묻거나, 혹은 무슨 요구조건을 내걸 때 글 쓰는 방식이다. 추 장관은 문단마다 모두 7개의 번호를 붙여가면서 조목조목 얘기하고 있어서 전혀 사과한다는 마음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문단 1)은 이렇게 돼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국민께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아들의 군 복무 시절 문제로 걱정을 끼쳐 드리고 있습니다. 먼저 국민께 정말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 부분을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다만 국민을 위로하고, 송구하다면서 슬쩍 단어 하나를 바꿔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여러 의혹’이라고 해야 할 것을 ‘군 복무 시절 문제’라고 한 점이다. ‘의혹’과 ‘문제’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의혹’이란 범법 혐의를 묻는 단어인 것이고, ‘문제’란 표현은 그런 혐의를 걷어내 버린 단어다.

▲둘째 문단 2)는 이렇게 돼 있다. “(…) 검찰은 누구도 의식하지 말고, 오로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라는 국민의 명령에만 복무해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법무장관이 검찰에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 얼핏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였다고 보는데 정확할 것이다. 왜 그렇게 보는가. 바로 다음 문단 때문이다. 셋째 문단 3)은 이렇게 돼 있다. “제 아들은 입대 전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습니다. (…) 군 생활 중 오른쪽 무릎도 또 한 번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 물론 남은 군 복무를 모두 마쳤습니다. (…) 절차를 어길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자, 여러분, 금세 알아차리셨는가. 둘째 문단과 셋째 문단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논리 구조를 바로 눈치 채셨는가. 둘째 문단은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라” 라고 돼 있고, 셋째 문단은 “(우리 모자(母子)는) 절차를 전혀 어기지 않았다” 라고 돼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검찰의 인사권, 지휘·감독권을 틀어쥔 법무장관이 검찰에게 ‘진실을 밝히라’고 해놓고 정작 ‘자신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는 식이니, 우리는 이보다 더 지독한 ‘살아 있는 권력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본 적이 없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말했다. “23일간에 걸친 장기연속 휴가에 문제·특혜·청탁이 없다는 주장은 답을 정해 놓고 검찰에 답을 말해 주는 격이다.”

▲추 장관 글의 네 번째 단락 4)는 대뜸 이렇게 시작한다. “제 남편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입니다.(…)” 이것 역시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아니 누가 물어봤는가. 누가 궁금하다고 했는가. 왜 난데없이 장애인 남편 이야기를 꺼내는가. 이런 감성팔이 방식으로 교묘한 말을 하니까 국민의힘 배현진 원내대표가 핀잔을 주는 것이다. “아들의 황제 군복무 논란은 어디 가고 난데없이 가족 신파를 쓰냐.” “가련한 시늉을 하며 본질을 흐리지 말라.” 아들이 아버지와 장애인 차량을 공동 구입했다 해서 잠시 구설에 오르기는 했으나, 그러나 우리는 직접 관련이 없는 가족 이야기를 언급하지는 않겠다.

▲추 장관 글 다섯 째 단락 5), 그리고 여섯 째 단락 6)은 다음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저는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 어떤 역경 앞에서도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는가. 지금 국민들은 추미애 대표의 보좌관이 부대에 전화를 해서 아들의 병가 연장을 요청했다는 의혹, 자대 배치 및 통역병 관련해서 당 대표실에서 부정 청탁을 했다는 의혹,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을 둘러싼 인사 의혹 등등에 대해 추미애 장관이 명백하게 사실과 다르게 말해왔던 부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해명은 단 한마디도 없이 추 장관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한 적 없다’ ‘역경 앞에 원칙을 지켜왔다’며 검찰에 대한 수사 가이드라인을 강력하게 하달하고 있는 것이다. “추 장관이 이럴 줄을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추 장관은 이처럼 검찰에 대해 협박에 가까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다음, 이 글의 결론 부분인 일곱째 단락 7)을 이렇게 끝맺는다. “기필코 검찰개혁을 완성하겠습니다.” 추 장관이 말했던 검찰개혁의 내용은 대부분 ‘인사 학살’이었다. 이 결론을 듣는 수사 검사들은 등골이 서늘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