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이 2021년10월 8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기상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기상청이 도입하는데 총 1192억원이 지출된 슈퍼 컴퓨터 1~3호기를 7920만원에 고철로 판 것으로 8일 드러났다. 한 대에 몇 백억원씩 하는 슈퍼컴퓨터를 구매한 뒤 교체 주기만 되면 성능 저하가 없는데도 의례적으로 ‘고철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고가 장비인 만큼, 교체 주기가 지난 슈퍼컴퓨터를 재활용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이날 “각 부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상청이 2000년부터 작년까지 슈퍼 컴퓨터 1~3호기를 도입하는데 총 1192억원을 지출했으며, 이를 7920만원에 고철로 팔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상청은 2000년 166억원을 들여 도입한 슈퍼컴 1호기를 2006년 120만원에 고철 처리했다. 2005년에 485억원을 들인 2호기와 2003년 541억을 투자한 3호기 역시 마찬가지의 절차를 거쳤다.

이들 장비는 2020년 7월 고철 처리됐는데, 회수한 금액은 두 장비를 합쳐 7800만원에 그쳤다. 결국 1~3호기 도입 비용 1192억원 중 고철 처리 비용으로 회수한 금액은 7920만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특히 슈퍼컴퓨터 3호기의 경우 매각 당시 평가 가치가 여전히 100억원을 넘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기상청은 연간 유지 비용이 많이 들고 매수자가 없다는 이유로 적정가격에 처리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용 연한이 지난 슈퍼컴퓨터의 성능이 여전히 뛰어나다는 데 있다. 권 의원 측에 따르면 현재 6년이 지난 슈퍼컴퓨터들은 여전히 500위권 내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기상청에 들여와 사용 연한(5년)을 넘겨 처분 절차를 기다리는 슈퍼컴퓨터 4호기 ‘누리’와 ‘미리’도 각각 세계 209위, 210위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상청은 여전히 이들 슈퍼컴에 대한 구체적 처분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이전처럼 헐값에 ‘고철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권 의원 측의 지적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권 의원은 “해외 사례를 보면 조달·구매 단계에서 수거 조항을 삽입해 연구기관용으로 재사용되거나 외교용으로 저개발 국가에 기부되고 있다”며 “혈세로 큰돈을 들여 비싼 장비를 산 만큼 우리도 퇴역 슈퍼컴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