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을 한 가지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택하겠습니까?”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답이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 마음을 읽는 능력’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노라면 마치 그런 초능력을 가진 느낌이 든다. 일면식도 없는 무수한 사람들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생각 풍선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런데 그 생각들이라는 게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기사와 관계없이 튀어나오는 상스러운 표현들,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혐오, 증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글에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더라고 했던가? 맘충, 급식충, 노인충, 한남충…. 우리 모두 어느새 벌레가 되어 있다.

일러스트=박상훈

참을 수 없는 온라인 소통의 무례함

온라인 공간을 점령한 혐오 발언들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한 소통이 점차 활발해지면서, 매개된(요즘 말로는 언택트)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으로 주목받은 것이 바로 인신공격, 차별적 발언, 욕설 등을 통칭하는 ‘플레이밍(flaming)’이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모를 거라 생각하면 면전에서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말들도 쉽게 내뱉어진다. 반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상상하고 그가 내 글을 읽으면서 받을 상처나 고통을 짐작하는 것은 자못 어렵다. 누가 누군지 구별되지 않는 상태에서 집단 정체성 단서가 주어지면, 이를 근거로 ‘우리’와 ‘그들’로 갈라쳐 상대를 공격한다. 남성 대 여성, 보수 대 진보, 노인 대 청년, 임대인 대 임차인처럼, 이슈에 따라 집단이 나뉘고 서로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한다. 소위 ‘토착 왜구’와 ‘대깨문’ 사이에 대화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부정적 감정은 전염된다

혐오 발언은 혐오의 대상이 된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2014년 출판된 ‘페이스북 감정 전이 연구(Experimental evidence of massive-scale emotional contagion through social networks)'에서는 약 70만명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뉴스 피드를 조작해서 일부는 친구들의 긍정적인 글에, 일부는 부정적인 글에 더 많이 노출되도록 했다. 연구 결과, 어떤 글에 노출됐는가에 따라 작성하는 글의 감정도 같은 방향으로 달라졌다. 이 연구는 참여자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구 윤리 위반 사례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대면 접촉 없이 타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감정이 전염된다는 것을 소위 빅 데이터로 보여줬다. 이처럼 분노, 증오, 경멸로 얼룩진 발언들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유사한 부정적 감정을 빈번하게 경험하게 되는데, 심리학의 일반 공격 모형(general aggression model)에 따르면 이러한 경험은 주어진 환경을 해석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공격적 반응을 유발하기 쉽다.

다음의 연예뉴스 댓글난 폐지 조치에 대한 입장 비교

왜곡된 현실 인식

많은 경우 혐오 발언은 근거 없는 주장, 심지어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정보를 담고 있고, 이는 사람들의 현실 인식을 왜곡할 수 있다. 필자가 해외 학술지(Communication Monographs)에 출판한 연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범죄 기사와 함께 댓글을 보여주면서 한 조건에서는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담은 댓글(“원래 전라도/경상도 X들이 그렇지”)을 포함시켰다. 이후 다양한 범죄 유형별로 대도시들의 범죄율 순위를 물었을 때, 앞의 댓글을 본 사람들 중 해당 지역 대도시(전라도 기사를 본 사람들은 광주, 경상도 기사를 본 사람들은 부산) 범죄율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13.68%로, 해당 댓글을 보지 않은 사람들(7.09%)보다 배 가까이 높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역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댓글과 함께 이를 반박하는 댓글(“범죄가 전라도/경상도 가리냐”)을 읽은 경우(8.99%), 이러한 효과가 감소했다는 점이랄까.

사회자본의 붕괴

마지막으로 혐오 발언은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다른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는 공동체를 이루는 근간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에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불린다. 삼복 무더위에 숨이 턱턱 막혀도 마스크를 챙겨 쓰고 오랫동안 별렀던 여행을 취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어려움을 감수할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란한 욕설과 혐오로 도배된 댓글판을 보노라면, 어딘가에서 마주칠지 모르는, 아마도 선량해 보이는 누군가가 이 글을 썼을 거란 생각에 오싹해진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언론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차별, 인종차별, 인신공격성 댓글이 달린 경우와 점잖은 댓글들이 게시된 경우 타인에 대한 신뢰가 달라지는지 검증했는데, 악플이 달린 경우는(4.59) 댓글이 없는 조건(4.44)과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으나, 점잖은 글들이 오고 간 경우에는(5.52) 타인에 대한 신뢰가 유의미하게 향상됐다. 즉, 혐오 발언에 익숙해져 바닥을 찍은 사회적 신뢰가, ‘의외로’ 예의 바른 글들을 접한 뒤 높아진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혐오야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악플로 고통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유명인들이 늘어나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플랫폼 기업들은 연예란 댓글 폐지, 댓글 이력 공개,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악성 댓글 삭제 등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도사린 혐오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지지부진이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 의원에 당선된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의원에게 공화당 남자 의원이 면전에서 여성 혐오 발언을 퍼붓는 사건이 있었다. 문제가 되자 해당 의원은 “나도 아내와 딸들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발언을 부인했다. 이에 AOC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타깃이 되는 경험은 새삼 놀랍지 않으며, 오히려 뿌리 깊은 여성 혐오를 만천하에 알려줘서 고맙다고 답해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댓글난이 있어서, 유튜브 때문에 혐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속내를 드러내는 온라인 공간이 있기에 꽁꽁 감춰두었던 우리 안의 혐오와 무지, 편견이 민낯을 비로소 보이게 된 것이라면, 어쩌면 차라리 감사할 일 아닌가.